[책마을] 주먹도끼는 구석기 시대 '맥가이버칼'이었다

입력 2020-09-11 02:54   수정 2020-09-11 02:56


주먹도끼는 구석기시대 대표 유물이다. 경기 연천 전곡리 등 임진·한탄강 유역을 비롯해 한반도 거의 전 지역에서 발견된다. 이름대로 아랫부분을 손으로 주먹처럼 쥐고 사용하지만 쓰임새는 도끼에 한정되지 않았다. 찢고, 자르고, 찍고, 땅을 파는 다기능 도구였다. 흔히 현대의 ‘맥가이버칼’에 비유되는 이유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는 신간 《한류 미학 1》에서 전곡리 유적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를 모델로 다용도로 고안된 디자인을 설명한다. 주먹도끼를 손에 쥐고 세운 형태에서 맨 위쪽은 뾰족하고 양쪽 비스듬한 경사면에는 얇은 날이 서 있다. 한쪽은 칼처럼 굴곡이 없고 다른 한쪽은 지그재그로 울퉁불퉁하다. 뾰쪽한 부분으로 구멍을 뚫고, 완만한 날로 자르고, 톱날 같은 면으로 재료를 찢는다. 그런데 기능적인 우수함에 비해 모양은 하나같이 거칠다. 왜 그럴까.

저자는 그 이유를 기술 부족이나 원시성에서 찾지 않는다. 구석기인의 당시 상황을 살펴보고, 모든 도구는 처한 환경에 대한 대응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합리성이 두드러진다고 주장한다. 추운 환경에서 먹을거리를 찾아 끊임없이 떠돌아야 하는 구석기인에게는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으로 최대의 기능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다. “주먹도끼는 가성비 좋은 일회용품”이었다.

저자는 한국의 유물들을 현대적 디자인과 인문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당대의 실용성과 사회적 심미성, 유행, 보편적 조형성 등을 연구해왔다. 삶 속 사용성과 아름다움을 다루는 디자인의 시각으로 유물을 볼 때 지금 우리에게 더 새롭고 의미있는 가치들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책은 그렇게 분석하고 해석한 내용을 정리한 ‘한류 미학’ 시리즈의 첫 권이다. 내년까지 총 다섯 권이 순차적으로 나온다. 그중 첫 번째 권이 다루는 범위는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다. 주먹도끼부터 저자가 ‘통일신라 조형예술의 종합선물세트’로 표현한 감은사지 동탑 사리구까지 모두 30점이 등장한다.

저자는 신석기 대표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의 경우 표면에 그어진 빗살무늬보다 역삼각형 구조에 주목한다. 신석기인이 주로 거주했던 강가 모래밭에 놓고 쓰기에 최적화된 디자인이라고 강조한다. “직면한 환경에 필요한 기능적 문제를 가장 만들기 쉬운 구조로 정확하게 해결했다는 점에서 현대 디자인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며 “당장 우리 생활에 응용해도 될 만한 디자인 콘셉트를 지녔다”고 평가한다.

경주 감은사 터 동쪽 탑에서 나온 사리구 상자 한쪽 면에 조각된 서방 광목천상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다. 만화 ‘드래곤 볼’에 나올 법한 캐릭터 같은 이 조각상에서 두드러진 점은 악귀를 쫓는 사천왕임에도 허리가 잘록한 여성적인 몸매를 지녔다는 것이다. 이 덕분에 사납기보다 우아하고 세련돼 보인다. 저자는 이런 디자인을 남성복에 잘록한 허리를 만들어 여성적인 우아함을 불어넣은 조르조 아르마니의 패션디자인과 비교한다. 그는 “광목천상은 허리선이 밋밋한 중국 불상과는 많이 다르다”며 “통일신라가 당나라와는 다른 독자적인 불교문화를 이뤘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각 유물에 담긴 현대적인 조형미와 실용성 등을 직접 스케치한 그림과 도형, 사진 중심으로 알기 쉽게 설명한다. 유물들을 다양한 현대 디자인, 현대미술 작품과 비교하며 그 속에 들어 있는 ‘현재성’을 이끌어낸다. 유물이 제작된 시대의 문화와 생활 수준을 새롭게 인식하고 바라보도록 일깨운다. 고려와 조선, 근현대로 이어지는 후속작을 기대하게 한다. 저자는 “유물이 만들어졌을 당시의 논리나 언어는 가급적 피하고 문화 보편성에 입각해 오늘날의 이론과 현상에 비춰 설명했다”며 “유물을 접하고 보는 현대인에게는 과학적이고 현대적인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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