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한·미 동맹이 '기술동맹'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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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9-10 17:55   수정 2020-09-11 00:16

[안현실 칼럼] 한·미 동맹이 '기술동맹' 된다면

‘안보는 미국’보다 ‘경제는 중국’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많다. 중국은 2003년부터 한국의 최대 수출국, 2007년부터 최대 수입국으로 부상했지만, 이게 경제의 전부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이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미치는 영향, 미국이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 리더십에서 중국을 압도한다는 점만 생각해도 그렇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글로벌 가치사슬(GVC)이 지역 가치사슬(RVC)로 이동한다지만, ‘수출 한국’으로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자칫 동북아시아에 갇혀버리면 중국에 함몰될 것이란 위기감부터 그렇다. RVC로 가더라도 한국이 역내 위상을 높이려면 다른 RVC로 네트워크를 확장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미래로 갈수록 더 중요한 경제적 자산이 될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의 감각은 정부에 비할 바 아니다. 매일 생존을 고민하는 기업의 움직임에서 잡히는 시그널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코로나19로 더욱 격화되고 있는 미·중 충돌의 파고를 한국이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헤쳐나갈지, 방향타가 될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가 미국 1위 통신사 버라이즌에 5세대(5G) 통신장비 공급을 확대하는 계약 체결 소식에 여러 의미가 더해지는 이유는, 미·중 충돌 속에 미국이 작심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국 화웨이 제거 작전 때문일 것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IBM, 엔비디아, 퀄컴으로부터 잇따라 수주에 성공한 것도 그렇다. 두산중공업이 미국 원전 전문회사 뉴스케일파워와 원자로 모듈 공급 계약을 맺은 것 또한, 중국이 원전 강국으로 급부상한 상황에서 비상한 관심을 끈다. LG화학 등 국내 전기차배터리 회사와 GM, 테슬라 등 미국 자동차 회사 간 거래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그려내는 새로운 구도는 한·미 기술동맹, 산업동맹을 꿈꿀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는 한국에 돌파구를 여는 단초가 될 수 있다.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해외 어느 곳과 기술협력을 원하는지 물으면 세계 최고 혁신 권역으로 불리는 북미, 그중에서도 미국이 단연 앞선다. 협력 희망 분야도 AI 등 포스트 반도체, 첨단 소재·부품·장비, 자율주행·친환경 등 미래차, 지능형 로봇, 스마트팩토리, 미래형 디스플레이 등 4차 산업혁명 주도기술 일색이다.

과거엔 아쉬울 게 별로 없는 미국과의 기술협력이 한국의 짝사랑으로 그친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미·중 충돌과 코로나19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미국 내에서 한·미 기술협력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시각들이 포착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미국 브루킹스는 미국이 미·중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한국의 압박감을 경감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헤리티지재단은 한·미 FTA 효용성 극대화와 함께 5G, 공공보건 등 생명공학 연구, 에너지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미 협력 분야로 제시했다. 미국외교협회(CFR)는 자율자동차, 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기준 제정에서 한·미 협력을 제안했다.

한국은 미국과 원자력 협정, 우주협력협정을 맺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AI 글로벌 파트너십(GPAI)의 창립회원이기도 하다. 한국이 미국과 기술협력을 공고히 한다면 국내 벤처가 중국이 빠진 실리콘밸리를 안방처럼 드나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중국의 경제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도 많다. 이 점을 십분 인정하더라도 중국에 대한 높은 수출 의존도가 사드 보복처럼 한국을 공격하는 무기로 되돌아올 때 대응할 카드가 없는 국가로 계속 갈 수는 없다.

‘힘의 규칙’이 아니라 ‘규칙의 힘’으로 가야 한국이 산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멀어지기를 바라는 중국 입장에서 볼 때 지식재산권을 존중하는 한·미 기술동맹은 그 가능성만으로도 한국의 위상을 높여줄 게 분명하다.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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