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구제도, 공공의대도 반대"…2030 '세대정신' 된 공정성

입력 2020-09-12 10:00   수정 2020-09-12 23:47


의사 국가시험(국시)에 대거 미응시한 의대생을 구제해야 할까.

전국 의대 본과 4학년 학생들은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공공의대) 신설 및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해 국시 응시 거부 집단행동을 벌였다. 지난 6일 접수를 마감한 제85회 국시 실기시험에는 응시대상 3172명 중 14%에 불과한 446명만 신청, 결국 이 인원으로 8일 시험이 시작됐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의료계는 정부가 나서 의대생을 구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계 집단휴진을 접기로 합의한 만큼 정부가 대승적 차원에서 액션을 취하고, 앞으로 생길 의료공백을 막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이유다.

하지만 여론은 반대 목소리가 훨씬 크다.

공무원 준비생 정모씨(26·여)는 "의대생은 본인들 이익을 위해 스스로 시험 응시를 포기한 것 아니냐. 국가가 구제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당사자인 의대 본과 4학년 학생들은 '구제해달라'는 입장을 직접 밝히지도 않는데 선배라는 현직 의료인들이 의대생 구제를 요청하는 상황이 다소 황당해보인다"고 덧붙였다.

의대생 구제에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정성'이다. 정씨는 "취업준비생들은 토익(TOEIC) 시험 입실 시간에 5분만 늦어도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접수 기간이 지난 시험을 치르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간 시험인 토익도 이런데 국가시험에는 공정성 잣대를 더욱 강하게 들이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유사한 입장을 이미 밝힌 상태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지난10일 브리핑에서 "의대생들 스스로 시험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추가 시험을 검토할 필요성이 상당히 떨어진다고 본다. 만약 검토한다 해도 다른 국가시험과의 형평성, 공정성을 고려해 국민적 합의가 수반될 필요가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의사는 '엘리트 집단'…특혜 줘선 안돼"
의사가 '엘리트 집단'인 만큼 미래의 의사가 될 의대생에게 일찌감치 특혜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직장인 김모씨(34)는 "미래의 특권층인 의대생에게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 일정을 바꿔주는 특혜를 주면, 그들은 특혜를 받는 것에 익숙한 의사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씨는 "애초에 국시를 거부할 때 의사 면허 취득이 1년 늦어지는 것을 예상했을 테고, 투쟁을 통해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면 스스로 책임도 져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정성과 특혜 문제로 국시 응시를 거부한 의대생을 구제해선 안 된다는 주장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올라왔다.

지난달 24일 게시된 '국시 접수 취소한 의대생들에 대한 재접수 등 추후 구제를 반대합니다'라는 글에서 청원인은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이) 추후 구제 또는 특별 재접수라는 방법으로 의사면허를 받게 된다면 그들은 국가 방역의 절체절명 순간에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이기주의적 행태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의대생이 단체로 시험을 취소한 것은 나라에서 어떠한 식으로든 구제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단체 행동이라 생각한다"며 "옳고 그름을 떠나 투쟁의 수단으로 포기한 응시 기회가 어떠한 형태로든 추가 제공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없다. 그 자체로 그들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 청원글은 12일 오전 10시 기준 54만여명의 동의를 얻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2030 세대가 중요시하는 가치인 '공정성'을 건드림과 동시에 특권층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의협이 정부·여당과 합의했으면 의대생들도 어느 정도 맞춰 가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대학생이 정부 상대로 정치적 구호를 이렇게 강경하게 외칠 수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이어 "특권층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괘씸하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추천으로 입학하는 공공의대? 공정하지 않아"

공정성을 중시하는 분위기는 다른 쟁점을 두고서도 확인된다. 의대생 구제에도 반대하지만 공공의대 설립 추진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모양새다. 의료계에 대한 반감과는 별개로 '공정성' 이슈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박모씨(33)는 "수험생 때 의대 진학을 준비했지만 3수를 했어도 못 갔다. 하지만 시험 성적이란 객관적 평가였기에 억울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성적이 아닌 추천제로 인해 떨어졌다고 하면 '왜 우리 부모님은 특권층이 아닐까', '왜 나는 추천을 못 받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불만을 가졌을 것 같다"고 했다.

앞서 복지부는 2018년 10월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공개했다. 이 대책에는 '시도지사 추천으로 해당 지역 출신자를 선발하고, 해당 지역에 근무하도록 함으로써 지역 의료에 대한 사명감을 고취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를 두고 의사가 될 공공의대 입학생을 시도지사 추천으로 뽑는 건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후 복지부는 단순히 시도지사가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닌 전문가 및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해 중립적 추천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며, 공공의대가 법률로 통과되지 않은 만큼 예시적으로 표현한 방안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여론은 '추천제도' 자체에 반감을 가지는 분위기다. 대학생 박모씨(22)는 "성적 상위권의 이과생이라면 누구나 의대를 가고 싶어한다. 성적순이 아닌 특정 단체 추천으로 의대에 입학한다면 심각한 불공정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씨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패러디물을 언급하며 "추천제도와 관련한 내용이 알려지자 마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불공정 입학 사례를 예상하는 패러디물이 연달아 올라왔다"며 "온 국민이 부작용을 예상할 수 있을 만큼 부적절한 제도임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공공의대(2020) 시나리오'라는 제목으로 각종 드라마를 패러디한 게시물이 올라오고 있다. 자녀를 의대에 보내기 위해 학부모가 전략적으로 시민단체 등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담겼다.
"추천제는 불공정 시비 붙을 수밖에…기준 명확히 해야"
입시전문가들은 공공의대 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합격 기준 등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학생부종합전형만해도 '깜깜이 전형'이란 비판을 많이 받았고 이에 따라 수시가 줄고 정시가 늘어나는 구조로 가고 있다"면서 "추천제도는 추천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끼리만 경쟁하는 시스템으로 불공정 시비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능처럼 전국의 모든 수험생이 동일한 시험을 보고 객관적 점수로 평가받는 경우는 기준이 명확하지만, 이 같은 전형이 아닐 경우 합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명확히 공개해야 특혜 의혹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공정성이나 특혜 논란을 없애려면 어느 지역, 어느 대학이 학생을 몇 명 뽑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면서 "선발 방식이 그 어떤 전형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며 공공의대라는 이유로 수준이 낮은 학생이 입학했다는 지적이 나오지 않도록 입시 시스템을 다른 의대와 같은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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