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 폐업 문의 10배"…용산전자상가 서글픈 호황

입력 2020-09-11 17:42   수정 2020-09-12 02:08


국내 중고 PC의 집결지인 서울 용산전자상가 내 선인상가 4층. 11일 오후 이곳에서 중고 조립 PC를 취급하는 H업체의 전화벨이 연신 울려댔다. 주로 폐업을 앞두고 중고 PC 매입 단가를 문의하는 PC방 점주들의 전화다.

이 업체의 박모 대표는 “PC방 폐업 매물 관련 문의가 하루 10건 이상씩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엔 하루 한 건 걸려올까 말까 했는데 지난달 정부의 집합금지 조치로 PC방 영업이 전면 중단된 후 문의가 급증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최근 일감이 늘면서 중고 PC에서 값어치 있는 부속을 떼는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 직원 두 명을 새로 채용했다”고 했다.

너비 2m 남짓의 선인상가 통로 곳곳에는 중고 PC가 수십 대씩 벽돌처럼 쌓여있다. 고정비 부담을 못 견디고 폐업한 전국 PC방에서 쏟아져들어온 물건들이다.
중고 PC시장 ‘때아닌 특수’
선인상가는 크고 작은 상점 780여 개가 모인 컴퓨터 전문상가다. 한때 컴퓨터 관련 단일상가로는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굳건했던 이 상가는 2000년대 들어 용산전자상가의 쇠락과 함께 내리막길을 걸었다. 온라인 최저가 비교 사이트가 생기면서 발품을 팔아 컴퓨터를 살 이유가 없어져서다.

하지만 요즘 “20년 만에 다시 호황기가 찾아왔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폐업하는 PC방이 늘면서 중고 PC 매물이 넘쳐나는 가운데 직장인의 재택근무와 학생들의 비대면 학습 등으로 가정 내 데스크톱 수요가 증가하면서다. 유만식 선인상우회 회장은 “지난 7월부터 두 달가량 매출이 상가 전체적으로 30%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선인상가에서 만난 안광일 몬스터컴 실장은 “폐업 PC방에서 대량으로 들어온 물건이 매번 빠르게 소진되면서 중고 PC 판매량이 예년보다 세 배는 늘었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 구매자는 개인 소비자”라며 “재택근무가 늘면서 모니터 화면이 큰 고사양의 컴퓨터, 그중에서도 가성비가 좋은 중고 PC를 찾는 손님이 많다”고 설명했다.

PC방 출입이 막히면서 중고 PC 렌털 서비스를 찾는 소비자도 늘었다. 한 PC 대여 전문업체의 하루평균 대여량은 40여 건으로 한 달 전보다 두 배가량 불어났다. 이 업체 관계자는 “집에서 PC방 환경 그대로 게임을 즐기려는 게이머들이 주 고객”이라고 전했다.
“돈은 벌지만 마음이 아프다”
선인상가 업주들에겐 오랜만의 활기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중고 PC 전문업체의 김모 사장은 “지난달까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버티다가 이달 들어 폐업한 PC방 업주가 주변에 여럿 있다”고 했다. 그는 “중고 PC가 신상품에 비해 마진율이 높긴 한데 돈을 버는 것을 떠나 문을 닫는 PC방 점주들의 절망적인 표정을 보면 난감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PC방 폐업 물건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유모 사장은 “폐업으로 매물을 팔겠다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지만 실제 계약이 성사되는 거래는 세 건 중 한 건 정도”라고 말했다. 중고 PC 한 대당 매입가(본체)는 최신 사양 기준으로 40만~50만원 수준. 그는 “PC방 사장들은 대당 5000원이라도 더 쳐달라고 하지만 수거에 드는 인건비와 유류비를 감안하면 양보하기가 어렵다”면서 “같은 자영업자로서 문 닫는 사장님들의 딱한 사정을 외면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유만식 회장은 “PC방 같은 사업이 망가진다면 컴퓨터산업은 물론 선인상가의 전망도 장기적으로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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