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정치인은 善한 동기 아닌 결과에 책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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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9-14 09:01  

[다시 읽는 명저] "정치인은 善한 동기 아닌 결과에 책임져야"

“정치인은 자신이 누릴 권력에 도취되기에 앞서 감당해야 할 권력을 책임 있게 수행해낼 자질과 역량을 갖췄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선(善)한 동기만으로 행위의 도덕성을 평가하면 안 되고, 행위가 가져온 결과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져야 한다.”

독일 정치·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그가 뮌헨대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했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를 직업 또는 소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자질과 덕목에 대해 설명했다.

베버는 1919년 이 책을 펴낸 동기에 대해 “독일에서 만연한 관료주의 때문”이라고 말했다. “입헌제의 발달로 한 사람의 지도적인 정치인이 정치 전반을 통일적으로 지휘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하지만 독일에선 전문적인 행정 훈련을 받은 관료에 의한 지배 현상이 강화돼 정당정치가 위축되고,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배출이 더욱 어렵게 됐다. 독일 정치인들은 권력도 없고 책임도 없으며 동종 직업집단인 ‘길드’와 같이 단지 협소한 이익을 추구하고 파벌 본능에 빠져 있다.”
“책임의식 없는 열정, 낭만주의일 뿐”
독일 정당과 의회가 관료들의 결정에 기계적으로 따르는 거수기 또는 실행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정치를 단순히 생계수단으로 삼는 정치인이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베버는 이런 독일 상황을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라고 규정하고 “관료 지배체제를 통제해 대의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정치 지도자가 갖춰야 할 세 가지 자질로 열정, 책임의식, 균형적 판단을 제시했다. 열정이란 불타오르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대의명분을 가진 일에 대한 헌신이다. 그는 “정치인의 권력 추구가 대의에 대한 헌신을 목표로 하지 않을 경우 폭군이나 단순한 권력추구자가 될 뿐”이라고 했다. 책임의식은 합법적 폭력 행사권이라는 수단을 파괴적으로 휘두르지 않게 하는 덕목이다. “정치 지도자가 책임의식이라는 자질로 권력을 통제하고 조절하지 않으면 지극히 위험할 수 있다. 책임의식 없는 열정은 지적인 낭만주의일 뿐이다.”

균형적 판단이란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열정과 책임감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자질이다. 베버는 “정치인이 대의에 헌신하지 않고 허영심과 자아도취에 빠져 책임의식과 균형감각을 상실했을 때 정치 타락이 발생한다”고 설파했다.

소명의식을 가진 직업 정치인이 갖춰야 할 자격은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정치와 윤리의 상관관계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의 의미를 “국가들 사이에서든, 집단들 사이에서든 권력에 참여하려는 노력 또는 권력 배분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했다. 국가에 대해선 ‘물리적 강제력’의 독점 주체로 규정했다. 그는 “이런 물리적 강제력의 사용권을 위임받은 정치 지도자는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기 쉽기 때문에 정치적 행위가 가져오는 ‘의도되지 않은 나쁜 결과’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제시했다. 신념윤리가는 ‘신념 실현이 가져다줄 수 있는 결과보다는 신념 실현 그 자체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의심스럽거나 위험한 수단을 선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부작용도 감수하는 경향을 보인다. “신념윤리에만 집착하는 정치가는 신념 실현의 결과가 자신의 의도와 어긋났을 때는 ‘세상이 어리석고 비열하지 내가 그런 건 아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나한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있으며,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고 이들의 어리석음과 비열함을 뿌리 뽑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반면 책임윤리는 행위로부터 예견되는 결과와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줄 아는 태도다. “왜 정치를 하는가에 대한 대의·이념·가치도 중요하지만 이런 신념을 현실에서 실현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며,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게 진정한 정치인의 모습이다.”
“온갖 어려움 견뎌낼 의지도 갖춰야”
그는 정치적 선의(善意)가 반드시 결과적 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정치인을 ‘유아(幼兒)적 정치인’이라고 했다. 또 “책임윤리를 망각하는 순간, 정치인의 신념은 이미 좌절된 신념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베버는 두 가지 윤리를 적절하게 겸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그것이 어렵다면 책임윤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정치인의 올바른 자세라고 했다.

베버가 진정한 정치인의 자질로 꼽은 또 하나는 권력 의지다. “정치란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이다. 온갖 어려움과 좌절을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의지를 갖춰야 한다. 어떤 난관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외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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