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자연의 힘, 사람의 힘

입력 2020-09-13 17:59   수정 2020-09-14 00:08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의 나이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 3만 년 전에 나타났다. 미미한 존재로 시작했지만 거의 전지전능한 신의 경지까지 도달한 것 아니냐는 거만함은 하늘을 찔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이런 자만심을 무너뜨리는 데 필요한 시간은 수개월에 불과했다. 자연의 위력에 새삼 경외감마저 든다. 그러나 이를 능히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문명사적 발전의 단초로 삼을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믿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퓰리처상 수상작 《총·균·쇠》에서 결과적으로 자연의 힘을 강조했다. 서구는 문명이 발달했고 뉴기니 원시 부족은 그렇지 못한 이유, 수백 명에 불과한 피사로의 스페인 군대가 잉카문명을 멸망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총·균·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기가 청동기를 능가하고 총이 칼을 이긴다는 것은 쉽게 이해된다. 그런데 균은 무슨 의미일까. 대부분의 전염병은 가축으로부터 사람에게 전염되므로 균은 수렵이 아니라 농경과 목축을 하는 진보된 문명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결국 문명의 발달이 총·균·쇠의 전제다. 문명의 발달 정도는 잉여 생산물 크기에 달려 있다. 하루하루 생존에 급급해서야 문명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조차 없을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소위 4대 문명의 발상지는 그 시대에 잉여 생산물을 가장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지역들이었을까. 농경사회 초기 경작에 가장 적합한 반건조 지역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자연적으로 주어진 지리적 이점이 초기 문명의 격차를 초래했고, 이 격차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다소 우울한 주장이다.

생산성이 높을수록 잉여 생산물도 많기 때문에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성이다. 생산성을 결정하는 요인엔 자연적인 요인과 인위적인 요인이 있다. 자연적인 요인이라는 것은 사람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 지리적인 이점이다. 인위적인 요인은 문자 그대로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인데,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에 의하면 상품, 사람, 지식 세 가지 요인의 이동 혹은 확산비용이 작을수록 생산성이 높다.

그런데 어떤 요인이 더 중요할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자연적 요인은 개별 인위적 요인보다 중요하지만 세 가지 인위적 요인을 합하면 자연적 요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사람이 자연에 의해 발생한 격차를 극복할 수 있으며, 사람이 자연의 역습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학기 중이지만 교정은 적막강산이다. 학생들의 활기로 가득 찬 교정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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