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세금부터 내고 아파트 등기해라"…'과잉 행정' 도마

입력 2020-09-15 11:09   수정 2020-09-15 11:26

내년부터 아파트의 소유권을 이전 등기할 때 '납세증명서' 제출이 의무사항으로 추가된다. 정부는 부동산 소유권을 이전하면서 발생하는 조세 회피를 방지하겠다는 의도지만, 현장에서는 불필요한 행정절차가 늘었다면서 '과잉 행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부동산 신탁사 입장에선 앞으로 아파트를 분양할 때마다 수백에서 수천명의 계약자들에게 납세증명서를 일일히 발급해줘야 한다

15일 행정안전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부동산 신탁 계약시 의무적으로 제출했던 납세증명서를 앞으로 신탁계약을 해지하거나 제 3자에게 매각할 때도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추진한다. 행전안전부는 지난달 신탁관련 지방세징수법 개정(안)을 발표했고, 이달 국회에 제출해 통과될 예정이다. 시행은 내년 1월1일부터다.

부동산 신탁사들은 "극히 예외적으로 발생한 신탁계약에 대한 체납을 해소하기 위해 모든 신탁의 소유권 이전 등시에 납세증명서 제출의무를 부과하는 건 비효율적이다"라고 반발하고 있다. 8월 현재 국내 부동산 신탁사 14곳이며, 수탁고는 240조원에 달한다.
정부 "6년동안 270억원 지방세 체납…세금부터 내고 등기해라"
일반적인 부동산을 거래할 때에는 소유권 이전등기 정도만 필요하지만, 중간에 부동산 신탁사가 낀 상태에서 부동산을 거래할 때에는 납세증명서를 제출해야하는 과정이 추가된다. 아파트를 분양받거나 재건축·재개발 등을 통해서 추진할 때에도 신탁 과정을 거친다. 부동산의 원래 소유자(시행사·조합 등)가 위탁자가 되고, 신탁을 맡아주는 쪽이 수탁자가가 된다. 신탁을 맡기는 과정에서 위탁자는 지방자치단체에 '납세증명서'를 내게 된다. 체납된 세금이 없이 부동산 신탁을 맡겨도 문제가 없다는 일종의 '증명'인 셈이다.

이후 수탁자가 부동산을 맡고 있는동안 발생하는 세금은 수탁자인 부동산 신탁사가 내게 된다. 이는 2014년 재산세법 개정에 따라 납세의무자를 위탁자에서 수탁자로 변경된 데에 따른 것이다. 부동산을 개발하는 과정 중에 발생하는 세금은 그동안 등기와 매매과정이 완료된 후, 수탁자가 지자체에 납세증명서를 냈다. 이번에 개정되는 법에 따르면 소유권 이전등기 이전에 지방세 납부를 완료하고, 이에 따른 납세증명서를 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선(先)매매 후(後)세금'이 가능했던 절차가 '선세금 후매매'로 변경되는 것이다.


정부는 체납된 세금을 털고 소유권 이전 등기절차로 넘어가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신탁을 해지하거나 위탁자가 다시 가져가는 경우 등에 납세증명서를 강제해 놓지 않다보니,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꾸준히 나왔다"며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된 체납액이 27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들의 요청과 지방세징수법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거래에서 신탁을 통한 소유권 이전은 일반적인 거래보다는 안전한 것으로 여겨졌다. 중간에 수탁자가 부동산 및 자금을 관리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부에서 이러한 신탁방식을 조세회피 방법으로 이용하면서 발생했다. 위탁자와 수탁자가 짜고 보유세 부담을 줄이는 방법으로 사용하거나, 위탁자가 계약을 해지하면서 신탁기간동안 발생한 세금을 터는 용도로도 사용된 사례도 있다. 예를들어 1가구 2주택이더라도 1주택을 신탁한다면 1주택자가 된다. 그만큼 재산세도 덜내게 된다. 일부 지방에서 빌라나 다세대주택 등을 짓는 과정에서 신탁을 이용한 세금회피가 발생하기도 했다.


정부는 세금이 빠져나갈 구멍을 원천 차단하겠다며 이를 의무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일선에서는 '대부분 체납없이 업무가 이뤄졌다'며 부담을 토로하고 있다. 가장 반발하는 쪽은 수탁사인 부동산 신탁사다. 부동산 신탁사들은 신탁의 수익을 나눠갖지 않고, 소정의 신탁보수를 받아서 업무를 수행했다. 납세증명서 제출이 의무화되면, 지방세 체납액까지 고스란히 부담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경우 부동산 신탁사의 유동성 문제와 재무건전성 악화 등으로 번질 수 있다.
"매년 30만건 이상 소유권 등기마다 납세증명서 첨부해야"
A 부동산 신탁사 관계자는 "일반적인 부동산 매매에서는 납세증명서를 내는 과정이 없는데, 신탁사에게만 강제하는 건 형평성에 저해된다"며 "과세관청인 지자체가 세금납부를 강제집행할 수 있음에도 이를 수탁자에게 전가하려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일반적인 아파트를 매매하는 과정에서 집주인의 세금체납은 증명대상이 아닌데, 신탁사를 통해서는 분양받는 아파트는 납세증명을 해야하는 건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현실적인 문제는 납세증명서 발급의 번거로움이다. 아파트를 분양받은 수분양자들이 소유권 이전등기를 할 때 관련 서류로 납세증명서가 추가된다. 온라인 발급도 불가능하다. 최근 늘어난 셀프등기를 하려면 지방자치단체의 세정과에 방문해 개별적으로 신청해 발급을 받아야 한다. 법무사의 등기업무에서는 납세증명서 발급이 추가된 셈이다.

일선의 김모 법무사는 "법의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실무에서 업무가 늘어나는 부분을 감안하지 않은 것 같다"며 "전국에 입주하는 모든 아파트의 가구마다 납세증명서가 하나씩 붙는다고 계산해도 1년에 수십만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한해에 30만건 이상의 소유권 이전 등기가 발생한다고 추측하고 있다. 매년 30만개의 서류와 이를 발급하는 행정비용, 법무사들의 업무비용 등이 추가될 전망이다.


또다른 B 부동산 신탁사 대표는 "일부의 일탈행위가 부동산 신탁사 전체의 문제이자 잠재적인 탈세의 원흉으로 찍힌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신탁사들은 신탁재산에 납부 가능한 자금이 있는 경우, 신탁 종료 이전 또는 신탁종료 정산 절차를 거쳐 성실하게 지방세를 납부해왔다"며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신탁종료 이후에도 체납이 발생하는데, 이런 경우에도 매각대금이 신탁재산에 남아있게 되므로 납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엔 신탁을 세금회피용으로 사용하는 위탁자(부동산 소유자)가 문제라는 얘기다"라며 "재산세의 납세의무자를 위탁자로 되돌려 놓고, 이들에게 납세의무를 하면 될 것을 수탁자는 부담이고 행정과정만 복잡해지게 됐다"고 꼬집었다.

행안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수탁자가 대량의 납세증명서를 발급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납세증명서 발급을 온라인으로 간소화하는 방법도 추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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