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오지 마라" 부모님 말씀에 독서·골프…모처럼 '나를 채우는 시간' [김상무 & 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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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9-14 17:25   수정 2020-09-25 16:23

"올해는 오지 마라" 부모님 말씀에 독서·골프…모처럼 '나를 채우는 시간' [김상무 & 이부장]


추석 연휴를 앞둔 김상무 이부장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맞이하는 첫 명절인데, 행동에 제약이 많다. 우선 고향에 갈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고, 정부가 귀향 자제를 권고하자 고향의 부모님은 “이번엔 오지 말라”고 하신다. 난감하다. 가자니 혹시나 하는 걱정이 들고, 안 가자니 부모님 얼굴이 어른거린다. 코로나19 이전엔 가능했던 명절 해외여행은 꿈 같은 얘기가 돼 버렸다. 김상무 이부장들은 올해 추석 연휴를 어떻게 보내려고 할까.
미뤘던 책 읽고 등산 계획도
추석 연휴에 자기계발과 취미생활에 시간을 쓰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중소 콘텐츠 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는 김 부장은 연휴 동안 미뤄왔던 인문학 관련 서적들을 읽기로 했다. 이번 연휴엔 아내와 신경전을 벌일 일이 줄어들 것이란 기대도 독서 계획을 세운 배경이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명절마다 서로의 부모님댁에 며칠간 있을지, 용돈은 얼마씩 드릴지 등을 놓고 아내와 말다툼을 벌였다. 하지만 이번엔 귀향 부담이 없어진 만큼 양쪽에 100만원씩 보내고 전화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김 부장은 “평소엔 당장 읽어야 하는 실용서적이 많다 보니 후순위로 밀린 책들이 많다”며 “이번 연휴에 인문학 책 다섯 권을 독파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국내 한 대기업 임원인 이 상무는 형제들과 연휴 기간 골프를 치기로 했다. 강원 고성이 고향인 그는 올해 고향집에 내려가는 것을 포기했다. 코로나19 청정지역인 고성에 오는 것을 부모님은 반기지 않았다. 부모님은 마을 사람들 눈치를 봤다. 혹시 서울에서 자식들이 방문했다가 코로나19를 옮길까봐 노심초사했다. 고향에 못 가게 된 것은 동생도 마찬가지다. 이 상무는 서울에 있는 형제끼리 우애도 다질 겸 경기도의 한 퍼블릭 골프장에서 보기로 했다. 동생도 마땅한 ‘대안’이 없어서 흔쾌히 응했다. 골프장 예약은 쉽지 않았다. 이 상무는 “연휴 첫날인 오는 30일과 토요일인 다음달 3일은 부킹이 거의 안 됐다”며 “코로나19 위험이 다소 덜한 골프장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녀 둘과 아내가 모두 미국에 머물고 있는 ‘기러기 아빠’ 김 상무는 ‘나홀로 연휴’에 산을 찾아 다닐 예정이다. 평소 같았으면 명절 연휴에 휴가를 보태 다녀왔겠지만 올해는 언감생심이다. 김 상무는 “아이들 여름방학 기간과 명절 연휴 등 1년에 두세 번은 가족들이 모일 수 있었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이마저도 어려워졌다”며 “살면서 처음으로 추석 연휴를 혼자 보내게 돼 많이 외로울 것 같아 등산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해야겠다고 생각 중”이라고 했다.
연휴에 일 자처하는 사람도
연휴에 일을 자처한 김상무 이부장도 있다. 한 금융회사 기획부서에서 근무하는 이 부장이 그렇다. 그는 직장생활 18년 만에 처음으로 추석 귀향을 포기했다. 대신 회사 사무실에서 이틀 정도 일할 예정이다. 연휴엔 공식적으로 휴무다. 하지만 회사가 추진 중인 신규 프로젝트를 위해 준비할 일이 쌓여 있다.

이 부장은 과거 대관업무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핀테크 프로젝트 팀에서 인허가 관련 업무를 맡게 됐다. 그는 “회사엔 중요한 프로젝트여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며 “비교적 한가한 연휴 기간을 활용해 추석 이후 올릴 보고서를 완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처지의 직원 몇 명도 출근한다. 회의 시간에 “고향도 못 가고, 해외여행도 못 가 발이 묶였으니 그냥 회사에서 밀린 일을 해야겠다”고 얘기를 꺼내자 여러 명이 함께 하겠다고 나섰다고 했다. 이 부장은 “쓸쓸한 연휴를 보내느니 회사에 나와 프로젝트를 준비하겠다는 동료가 여럿 있어 놀랐다”며 “회사에서 함께 맛있는 음식을 배달시켜 먹으면서 명절 분위기도 낼 예정”이라고 했다.

반대로 평소 연휴마다 일했던 한 간부 직원은 일이 없어졌다. 코로나19 탓이다. 그가 속한 부서는 명절마다 직원들의 귀향을 총괄하는 일을 맡아왔다. 귀향 목적지별, 계열사별 수요를 조사해 버스를 수십 대 대절했다. 주차 장소 물색부터 명절 이후 요금 정산까지 신경쓸 게 많았다. 귀향버스 감독을 하느라 정작 자신과 부서원들은 귀향 시간이 늦어질 때도 있었다. 박 부장은 “올 추석엔 코로나19 여파로 그룹 차원의 귀향 지원이 중단돼 함께 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후배 직원들도 내심 반기는 눈치”라고 말했다.
“그래도 명절엔 고향 가야죠”
코로나19 여파로 고향을 갈 수 있게 된 경우도 있다. 한 예술기관에서 근무하는 장 부장은 이번 추석 연휴에 고향인 충남 금산에 간다. 그에겐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코로나19 덕분에’다. 최근 몇 년간 추석 당일에도 공연장과 전시장이 열려 귀향을 포기했었다. 올해는 휴관이 길어져 시간 여유가 생겼다. 승용차를 타고, 되도록 휴게소도 들르지 않을 계획이다.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비롯해 알코올 솜, 비상약까지 미리 챙겨놨다. 장 부장은 “코로나19로 공연장 문을 닫는 것은 아쉽지만 그나마 그 덕에 명절날 부모님을 뵙고 차례상을 차릴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제조업체에 다니는 최 부장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귀향을 택했다. 지난주 3남매가 귀성 벌초 문제를 놓고 가족 카카오톡방에서 언쟁을 벌인 게 시발점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지 않은 만큼 벌초와 제사를 미루자는 의견과 조상과 가족에 대한 의무가 먼저라는 주장이 맞섰다고 했다. 막내인 최 부장이 별생각 없이 “올해 벌초하러 갔다간 (코로나19로 인해) 내년에 벌초를 당할 수도 있다”고 했더니 “그게 할 말이냐” “너는 항상 집안 문제는 뒷전” 등과 같은 비판이 쏟아졌다. 그는 “벌초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 가족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소홀히 하는 것 같아 순간 서운하고 짜증이 나는 바람에 말실수를 했다”며 “형님의 화를 풀어드리기 위해 선물을 싸들고 고향에 꾸역꾸역 가게 됐다”고 푸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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