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날까지 화웨이 수출 라이선스를 받은 국내 기업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17일 미국의 기술과 장비를 이용해 제조한 반도체를 화웨이에 공급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거래를 위해선 별도 라이선스를 받아야 한다고 발표했다. 수출규제 발효 하루 전인 이날까지 라이선스 발급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정부 한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확인해주기 힘든 사안”이라면서도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오는 20일부터는 중국에서만 11억 명의 이용자를 확보한 ‘국민 메신저’ 위챗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제재가 추가된다. 애플 아이폰 등에 위챗을 설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업계에선 중국 소비자들이 위챗을 설치할 수 없는 아이폰을 구매하지 않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 경우 애플에 디스플레이 제품을 공급해 온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가 타격을 입는다.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분쟁이 정보기술(IT)업계의 질서를 바꾸고 있다고 분석한다.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화웨이의 대체 수요를 확보하는 것이 ‘발등의 불’이다. 1차 타깃은 샤오미, 오포, 비보 등 화웨이 이외의 중국 스마트폰업체다. 화웨이의 공백을 틈타 2위권 업체들의 중국 시장 지배력이 크게 높아질 가능성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통신장비와 스마트폰 시장도 격변이 예상된다. 미국 정부의 수출규제로 세계 통신장비 시장 1위 업체인 화웨이의 행동반경이 좁아질 것이란 분석이다. 스마트폰 시장도 화웨이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미국의 화웨이 수출 규제 ‘D데이’를 하루 앞둔 14일 반도체업계 관계자가 꺼낸 말이다. 오랜 고객인 화웨이로의 수출길이 막히면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업계가 ‘포스트 화웨이’ 시장을 둘러싼 생존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지금은 화웨이 등 일부 업체만 미국 정부의 사정권에 있지만, 압박의 범위가 어디까지 넓어질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점도 리스크다.
반도체 수출 규제는 화웨이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카드다. 지금까지 화웨이는 스마트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설계해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TSMC에 위탁생산하는 방식으로 제조해왔다. 하지만 미국의 제재로 이 같은 방식은 더 이상 쓸 수 없다. 이미 TSMC는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선언한 상태다.
퀄컴 스냅드래곤, 삼성전자 엑시노스 등으로 대체할 수도 없다. 두 제품 모두 미국의 기술이 들어가 수출 규제 대상으로 분류된다. 범용 제품으로 분류되는 메모리 반도체를 자체 조달한다고 하더라도 고급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현재 15.1%인 화웨이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내년에 4.3%까지 곤두박질칠 것으로 전망했다.
통신장비 시장에서의 위상도 좁아지고 있다. 주요국들이 5세대(5G) 이동통신장비 입찰에서 화웨이를 배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화웨이 몫을 에릭슨, 노키아, 삼성전자 등이 나눠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부품 구매자가 바뀌어도 공급자는 그대로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메모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모두 일부 글로벌 대기업이 장악한 과점 시장이란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샤오미와 오포도 스마트폰을 만들려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구매해야 한다”며 “중국의 스마트폰 시장이 역성장하지 않는 이상 중장기 매출엔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대중국 제재를 강화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샤오미, 오포, 비보도 제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파운드리 업체 SMIC가 미 정부의 거래제한기업, 즉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 대표 사례다. 업계 관계자는 “거래처 관리, 기술 제휴 등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바이든 후보는 동맹국과의 연대 강화를 통한 대중 압박 시행과 미국의 지식재산권 보호, 미국 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 주도의 사이버 공격 제재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연구원 관계자는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동맹국과의 연대를 통해 대중 압박에 나설 것”이라며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송형석/이승우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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