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재난지원금, 그리고 연말정산 착시

입력 2020-09-15 09:26   수정 2020-09-15 10:01

연말 정산으로 많이 토해낼수록 웃어야
예기치 못한 돈은 사람의 판단을 종종 흐리게 만든다. 기대하지 않았던 돈이 수중에 들어오면 다수의 반응은 일단 기분 좋아한다는 것이다. '공 돈'이 생겼으니 무얼 살까? 고민하는 이도 있을테고 평소 먹고 싶던 음식을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빚을 갚기도 하고 누구는 이참에 저축을 할 수도 있다. 그 어떤 경우든, 예상치 않게 들어온 돈은 많은 이들을 즐겁게 만드는 듯하다.


그런데 여기에 맹점이 있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게 연말정산이다. 연말정산은 월급 받을 때마다 꼬박꼬박 세금을 떼인 봉급생활자들이 한 해가 다 가고 다음해 초에 각종 공제 등을 따져서 더 낸 세금을 돌려받고 덜 낸 세금은 더 내는 것이라는 건 다들 알 것이다.

웃기는 건 연말정산 환급금을 아직도 '13월의 월급'이라고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하긴 연초에 연말정산 결과 몇십만원이라도 받으면 입이 귀까지 찢어져서 한잔 하러가거나 식구들 데리고 한턱 쏘는 이들이 아직도 꽤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돈이 어떤 돈인지 한번 가만히 생각해보자.

각종 공제나 세금 감면 등을 정확하게 계산했다면 내가 낼 세금 액수는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다. 그런데 연말정산 결과 많은 돈을 돌려 받는 이들은 불필요하게 많은 돈을 나라에서 가져갔다가 1년 뒤에야 나에게 돌려주는 것이라는 생각부터 해야 한다. 누가 나한테 무이자로 돈을 왕창 꿔갔다가 1년 후에 그 돈을 한 번에 갚는다면 나는 몫돈이 생겼다고 즐거워해야 하나?

반대로 연말정산 결과 세금 환급이 아니라 추가로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어떤가? 이들은 내야할 세금을 1년 지나서 이자도 더 얹어주지 않고 뒤늦게 내는 것이니 그만큼 기한의 이익을 얻은 셈이다. 세금 낼 돈으로 다른데 투자했다면 그만큼의 기회이익도 얻을 수 있다. 요즘엔 연말정산 결과 추가로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들은 3개월 무이자 할부혜택까지도 누린다.

결국 연말정산으로 많은 돈을 환급받는 사람은 나의 돈을 무이자로 가져 갔다가 뒤늦게 돌려주는 국가에 이자라도 달라고 항의해야 옳은 일이다. 반대로 연말정산 결과 추가로 세금을 더 내는 사람은 돌아서 혼자 미소를 짓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다. 몇 푼이라도 환급을 받는 사람은 괜히 기분이 좋아져 실실 웃고 다니고, 주변 동료들은 죄다 환급 받는 것 같은데 추가로 세금을 내게 된 이들은 추가로 세금을 '토해 내야 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재난지원금은 현금서비스 쓰는 것과 같아
이처럼 아주 단순한 이치임에도 사람들의 돈 계산은 엉뚱해질 때가 있다. 연말정산과 같은 일종의 '착시'를 불러오는 또 다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코로나 때문에 '나라'에서 '준다'는 긴급재난지원금이다.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때를 돌이켜보면 당시에도 "총선을 앞둔 여당이 매표(買票)를 하는 것이다" "포퓰리즘인가 표(票)퓰리즘인가" "빚내서 부자들에게까지 돈 주는 게 과연 옳으냐" 하고 성토하는 이들이 주변에 적지 않았다.

그런데 재난지원금을 받아서 이런 저런 용도로 쓴 뒤 주변인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적잖이 놀랐다. 평소 양식이나 지식을 그래도 좀 갖췄다고 생각했던 사람중 상당수가 "그래도 받으니까 좋던데?"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재난지원금이 어떤 돈인지 역시 다시 따져봐야 한다.

우선 누구 돈인지부터 따져보자. 이건 전부 우리 국민 돈이다. 절대 '나라'나 '정부'나 '정치인'이 주는 게 아니다. 나라가 국민의 돈을 대신 나눠주는 '심부름'만 하는 것이지 결단코 남의 돈을 내가 '공짜'로 받는 게 아니다. 더욱 서글픈 것은 국민들이 저축해 놓은 돈도 아니고 빚을 내서 돈을 땡겨 쓰는, 일종의 현금서비스와도 같은 것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두고 두고 국민들이 이자까지 합해서 갚아야 하는 돈을 지금 정치인들이 마치 제 주머니 돈이라도 퍼주는 듯,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비상경제회의에서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방침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13세 이상 국민 모두에게 통신비를 지원하겠다며 "어려운 국민 모두를 위한 정부의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라고 말했다. 마치 정부가 국민에게 무언가를 정성스럽게 준다는 의미다.

하지만 4차 추가경정예산을 짜서 지급하는 7조원대의 2차 긴급재난지원금은 전액 빚을 내서 조달할 돈이다. 이 나라 빚은 현 정권 관계자들이 나중에 자기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갚는 게 아니라 전부 국민들이 세금 내서 갚아야 하는, 전 국민의 부채다. 내가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정치인들이 자기들 맘대로 나를 채무자로 하는 빚을 내서 그 돈을 지금 나에게 마치 공짜로 뭘 해주는 듯 생색내며 주는 게 재난지원금이다.

2차 지원금까지 조달하려면 국가채무비율이 44%에 육박하고 이게 몇년 뒤면 50%가 된다고 한다. 그 때가서 국가신용등급이라도 강등되면 지금 정치인들이 과연 책임을 질까?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것도 우습지만 이 돈이 어떤 성격인지부터 파악하는 게 급선무인 이유다.

만약 자신의 개인 재산을 팔아서 재난지원금으로 지급하겠다는 정치인이 있다면 두손 두발 다 들고 쫓아가 그를 대선주자라도 만들고 싶다. 하지만 주변을 잘 들 보시라.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 여당 대표, 국회의원, 지자체 장 중에서 단 한명이라도 이 어려운 시국에 자기 돈 헐어서 힘든 사람 돕겠다는 자가 있나. 제돈 내서 돕기는커녕 다주택을 포기하느니 청와대 수석직을 포기하는 이들이 있을 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큰 선심이라도 쓰듯,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뿌리자고 한다. 참 고약한 노릇 아닌가.

이런 자들에게 넘어가지 않으려면 국민들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제발 눈앞에 돈 생긴다고 무조건 좋아하지 말고 전후 좌우 좀 살펴보고 좋아하든지, 짜증내든지 하자.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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