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럽국 첫 마이너스 외평채의 주역들..."K방역의 힘 통했다"

입력 2020-09-16 11:07   수정 2020-09-16 11:45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는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이다. 금융시장도 불확실하긴 마찬가지다. 올 3월 13일 하루 동안 원-달러 환율이 장중 18원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정부가 외환시장 '방파제' 역할을 할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을 결정한 이유다. 외평채는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한 '외국환 평형 기금'을 조성할 목적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하늘길마저 막히면서 대면 투자자 설명회(로드쇼)가 불가능해졌다. 여기에 9월 초 승승장구하던 테슬라와 애플 등 기술주가 주저 앉으면서 나스닥 지수가 4% 넘게 하락했다. 투자심리가 움추러든 국면에서 외평채가 투자자들을 얼마나 움직일지 장담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과 주현준 과장과 이재우 서기관은 '정면승부'를 택했다. 주 과장은 "배수진을 쳤다"고 표현했다. 발행 여부를 확정 짓지 않고 투자자들의 의향을 떠보기보다는 오히려 외평채 발행을 전제로 못 박고 '딜(deal)' 로드쇼를 진행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외평채 발행 전 '논딜(non-deal)' 로드쇼를 해왔다. 딜 로드쇼 이후 1~2주 내 딜을 확정짓지 못하면 채권시장에서 '실패한 딜'로 낙인을 찍히게 된다. 최악의 경우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마저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결과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흥행'이었다. 정부는 지난 9일 14억5000만달러 규모 외평채 발행을 성사시켰다. 주 과장은 "당초 총 10억달러 규모로 예정했으나 수요가 몰려 발행 규모를 늘렸다"고 했다. 특히 5년 만기 유로화 외평채 발행금리는 역대 최저인 -0.059%다. 비(非)유럽 국가의 유로화 국채 충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에 발행됐다. 10년 만기 달러화 외평채 금리 역시 역대 최저 수준이다.

주 과장은 "외평채 발행 발표 2시간 만에 주관사에서 '북(book·투자의향서)이 쌓이고 있다. 금리를 더 낮춰도 될 것 같다'고 말할 때는 정말 짜릿했다"고 했다. 통상 투자자는 물론 주관사도 비유럽권 국가의 유로화 외평채에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기 마련이다. 이 서기관은 "2015년, 2018년, 2019년 그리고 올해까지 외평채 발행을 네 번째 경험해보는데 주관사가 먼저 금리를 낮추자고 한 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처음에는 달러화 외평채는 미국 국고채 10년물에 90bp를 더한 수준으로, 유로화는 미드 스와프 5년물에 60bp를 더한 수준으로 제시했다. 수요가 몰리자 유로화 외평채 가산금리를 25bp 떨어뜨려 35bp로 확정했다. 주 과장은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절벽'이 가장 걱정스러웠다"며 "하지만 금리를 낮춘 뒤에도 50억 유로 넘는 자금이 한국 외평채를 사겠다고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주 과장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한국의 투자가치가 저평가돼있다는 걸 숫자로 보여준 게 주효했던 것 같다"고 했다. 폴란드 등 한국보다 국제신용등급이 낮은 국가들의 가산금리, 국내총생산(GDP)를 직접 비교하는 파워포인트(PPT)를 만들기도 했다.

이번 외평채 발행에는 K-방역도 한몫 했다. 주 과장은 "투자 설명 PPT에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 그래프를 넣어놨는데 8월 중순 2차 확산세 직후라 걱정했다"며 "하지만 외국투자자들이 오히려 '코로나19 재확산세를 이렇게 바로 진정시킨 게 인상적'이라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 서기관은 "비유하자면 우리는 물건을 파는 역할을 한 거고 물건의 질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방역을 위해 국민들이 인내해주신 효과"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외평채 발행으로 민간 기업의 외화 조달에 차질을 빚는 '구축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정부도 이 같은 우려를 인식해 '최적의 타이밍'을 고심했다. 주 과장은 "일반적으로 채권 발행 시 피하는 국제 이벤트들이 있다"며 "외평채 발행 전 주에는 유럽중앙은행(ECB) 기준금리 결정이 있었고 발행 다음 주에는 미국 기준금리 결정이 예정된 상황이라 민간 기업들이 들어오기 힘든 기간이라 봤다"고 했다.

정부 외평채 발행 이후 수출입은행도 금리를 크게 낮춰 외화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주 과장은 "외평채는 외화채권 시장의 기준금리 역할을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팀 코리아'의 성과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주 과장은 "사실 외평채는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평가를 기반으로 한다"며 "국제금융국 이외 예산, 세제, 정책 등 기재부 내 타 실국뿐 아니라 다른 부처들과의 협업으로 이룬 성과"라고 감사를 표했다. 이어 "마이너스금리는 해외 투자자가 대한민국 국민들께 드리는 선물이자 표창장"이라고 덧붙였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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