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 큰 권력 쥐면 한국판 분서갱유 사태 올 것"

입력 2020-09-16 17:31   수정 2020-09-17 01:07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15일 지역화폐와 서민 대출 확대 정책을 비판한 국책연구기관들의 보고서를 두고 “엉터리 연구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고 맹비난하자 연구기관들과 학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유력 대선주자가 자신이 주도하는 정책을 비판했다고 ‘문책’을 거론하는 것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많다. 학자들 사이에선 “정책 비판에 이렇게 반응하는 정치인이 더 큰 권력을 쥐면 무서워서 연구도 제대로 못하게 되는 한국판 분서갱유 사태가 벌어질 것”(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이라는 우려마저 나왔다.

李 “엉터리 보고서, 엄정히 문책해야”
이 지사는 15일 SNS에 네 차례 글을 올려 격앙된 어조로 조세재정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난했다. 이날 조세연이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지역화폐가 역효과만 초래한다고 분석하고, KDI는 서민을 대상으로 한 저금리 대출 확대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는 이유에서다. 연구 주제가 모두 이 지사가 도입을 주도한 지역화폐 및 ‘기본대출권’과 관련된 보고서들이다.

이 지사가 이들 연구를 엉터리라고 비판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연구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을 비판하고 있고 △오래된 데이터를 사용해 국민들의 체감과 동떨어진 엉터리 연구 결과가 나왔으며 △경기연구원,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등이 발표한 기존 연구 결과와 다르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기획재정부 유관기관이 정치적 주장에 가까운 얼빠진 연구 결과를 왜 지금 제출했는지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문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구의 배경에 자신을 음해하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 있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국책연구기관 “이 지사 주장이 엉터리”
이 지사의 주장에 대해 연구기관 종사자들과 많은 경제학자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자체가 잘못이라는 주장은 과거 어떤 정치인도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정부 정책이 성공하려면 건전한 비판이 필요하다는 게 상식 아니냐”고 했다.

2010~2018년을 대상으로 연구한 점을 문제 삼은 것도 비상식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조세연 관계자는 “연구에 사용된 2018년 전국 사업체 전수조사 자료는 올해 나온 가장 최근 자료”라며 “정치적 의도가 당연히 없다”고 설명했다.

학계에선 “이 지사가 언급한 경기연구원 등의 선행 연구가 오히려 잘못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 기관은 지방자치단체 재원으로 운영된다. 지자체장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얘기다.

올초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재정학회에 의뢰해 제출받은 용역보고서도 이를 방증한다. 보고서는 “선행 연구들이 지역화폐의 긍정적인 영향을 과장했으며, 지역화폐가 지역 소비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또 다른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지역화폐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이라기보다 이 지사가 주도한 정책인데, 이를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와 교묘하게 동일시하도록 사실을 왜곡했다”며 “이번 기회에 정부 지지자들을 결집해 2차 재난지원금 등을 놓고 자신과 각을 세웠던 기재부를 때리려는 의도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유력 대선주자 인식에 공포”
‘문책 대상’으로 지목된 조세연을 비롯한 국책연구기관들은 술렁이고 있다. 한 연구기관의 연구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반적인 연구 성향이 다소 바뀌긴 하지만 이 지사의 이번 발언은 도를 한참 넘었다”고 했다.

학계에서도 반발이 터져나왔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정치인과 행정가는 국책연구기관의 연구를 참조해 더 나은 정책을 모색해야 하는데, 주요 대권후보가 연구자들을 탄압하는 시각을 드러낸 게 경악스럽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인 ‘J노믹스’의 설계자로 꼽히는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이런 분이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도지사고 유력 대선후보라니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도 “이 지사가 대통령이 되면 추진력을 어떻게 쓸지 정말 걱정스럽다”고 했다.

성수영/임도원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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