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연의 데스크 칼럼] 벤처 육성, BTS에서 배워라

입력 2020-09-16 18:08   수정 2020-09-17 00:22

문화를 수출하는 건 해외에 제품을 파는 것보다 어렵다. 언어와 관습 차이 등 ‘문화적 할인’이란 높은 장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 역시 문화의 속성이다. 현 중년 세대가 청소년 시절 홍콩 영화에 열광했던 건 당시 그들의 대중문화 수준이 한국보다 한 수 위였기 때문이란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에 이어 싱글차트까지 점령한 것은 한국 문화사에 이정표를 찍는 사건이다. 이미 가수 싸이가 2012년 빌보드 싱글 2위에 오른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싸이의 ‘강남 스타일’ 한 곡이 개인기를 바탕으로 반짝 히트한 사례였다. BTS는 글로벌 팬덤을 바탕으로 미국은 물론 세계 대중음악 시장을 휩쓸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BTS엔 없고, 벤처엔 있는 것
BTS가 글로벌 히트 상품이 된 이유는 무수히 많다. 핵심은 콘텐츠다. 7인조 보이그룹의 음악과 퍼포먼스에 세계 팬이 열광하는 건 그만큼 가장 트렌디하고 높은 수준의 리듬과 춤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완성도는 성공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SNS 등 국경을 뛰어넘는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한 팬덤 전략과 참여형 서사가 있는 스토리텔링 등이 충분조건으로 작용했다.

BTS의 성공 배경엔 간과할 수 없는 게 한 가지 있다. ‘정부가 없었다’는 점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대중음악은 정부 심의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 있었다. 1990년대 들어 대중음악 시장에 규제가 사라지면서 비로소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가능해졌다. 이후 수많은 댄스그룹이 쏟아져 나왔다. SM·JYP·YG로 대변되는 대형 기획사가 출현해 연습생 간 무한경쟁인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정착시켰고, BTS 탄생의 토양이 됐다. 정부가 대중음악 시장에 관심을 두고 ‘육성’이란 명분 아래 간섭의 손길을 뻗쳤다면 BTS라는 성공 신화는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이다.

역동적인 한국인들은 ‘벤처 DNA’를 타고났다. 우리 상장사 전부를 팔아도 살 수 없다는 미 애플의 성장 기반이 된 MP3플레이어를 세상에 처음 선보인 건 다름아닌 한국의 작은 벤처기업이었다. 세계 최대 SNS 페이스북에선 지금은 폐쇄된 한국의 1세대 SNS 싸이월드의 향기가 느껴진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가 싸이월드의 기능에 관심을 가졌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관건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
BTS와 같은 글로벌 K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의 출현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세계 100대 스타트업 가운데 31개사는 한국에서 사업하기조차 힘들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규제 장벽이 원인이다.

정부 관료들은 한국의 벤처 지원 정책이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 해외에서 좋다는 제도는 모두 들여와 짜 맞춰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벤처기업을 키우기 위해 특별법(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법)까지 제정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더욱이 정부가 나서 벤처기업을 직접 지정(벤처기업 인증제)하는 국가는 한국 외엔 찾아보기 힘들다.

벤처는 정부가 키우는 게 아니다. BTS가 정부 간섭이 없는 환경에서 스스로 자라났듯, 글로벌 유니콘 기업도 기업하기 좋은 환경에서 자생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지금처럼 정부와 국회가 합을 맞춰 하루가 멀다 하고 기업에 대한 규제와 처벌법을 만들어대는 환경에서 BTS와 같은 벤처기업 신화는 싹조차 틔우기 어렵다.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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