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이명박, 내가 뽑아"…최장수 현대맨 역사 속으로

입력 2020-09-16 18:05   수정 2020-09-17 03:24

현대그룹 창업 핵심 멤버로 정주영 명예회장을 도와 ‘현대 신화’를 일군 이춘림 전 현대중공업 회장이 1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1929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그는 경기고,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57년 현대건설 공채 1기로 입사해 현대건설 사장, 현대중공업 회장, 현대종합상사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산업계의 기틀을 세운 1세대 기업인이다. 현대그룹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가장 오랫동안 근무한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그는 부친과 정 명예회장의 친분이 계기가 돼 대학 재학 시절 부대 막사와 교회 건축을 도우며 현대와 인연을 맺었다. 창업 초창기부터 정 명예회장이 경영 전반을 논의했을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정 명예회장의 동생인 고(故) 정세영 HDC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도 절친한 친구로 지냈다. 현대건설 상무 시절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직접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은 “창업세대는 물론 2세대와도 가족 같은 인연으로 예우를 받았던 분”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현대건설의 야전사령관’으로 유명했다. 오전 6시면 현장에 나가 일을 챙길 정도로 꼼꼼하고 철저한 업무 스타일로 정평이 났다. 원리원칙을 중요하게 여겨 공사기한과 안전수칙 준수를 늘 강조했다. 김광명 전 현대건설 사장은 “기술자 출신답게 현장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기셨다”며 “말 그대로 한국 건설산업의 뿌리를 확립한 분”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건설업의 중동 진출을 진두지휘한 뒤 조선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 명예회장은 회고록에서 1966년 이 전 회장과 일본 요코하마 가와사키 조선소를 돌아보고 한국에도 조선소를 세우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이 전 회장은 1978년 현대중공업 사장을 맡아 한국 조선산업을 세계 1위로 키워냈다.

그는 현대건설과 현대중공업 사장 재직 시절 계열사의 인재 양성과 조직 정비에 힘썼다. 엄격한 원리원칙주의자였지만 소통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최길선 전 현대중공업 회장은 “부장 시절 회장실에서 직접 보고한 적이 있다”며 “위계질서가 지금보다 엄격하던 1980년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라고 회고했다.

이 전 회장은 현대그룹을 세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외부에 나서기 싫어하는 겸손한 성품 때문이다. 그는 1982년 한 인터뷰에서 “정 명예회장의 추진력과 결단이 오늘날의 현대그룹을 만들었고 현대가(家)가 큰 뒷받침이 됐다”며 자신을 낮췄다. 자신의 경조사 때는 한 번도 축의금과 부의금을 받지 않았을 정도로 청렴했다.

그는 은퇴 후 현대그룹 상임고문을 맡았으며 현대중공업 퇴직자 모임인 현대중우회에서 활동하며 후배들을 챙겼다. 이 전 회장은 2017년 HDC현대산업개발과의 영상 인터뷰에서 후배들에게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기보다 새로운 길을 여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 발인은 18일 오전 8시10분. (02)3010-2230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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