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건순의 제자백가] 윗사람들이 주는 잘못된 신호들

입력 2020-09-21 17:51   수정 2020-09-22 00:17

진(秦)나라 재상 상앙의 ‘이목지신(移木之信)’이라는 고사가 있다. 국가의 일에는 거짓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 사례인데, 그 고사를 보면 법가(法家)가 얼마나 신뢰라는 것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왜 법가 사상가들은 신뢰를 중시했을까? 개혁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수록 이익과 혜택의 시간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온 국민을 이롭게 하기 위해 추진하는 게 개혁이지만 당장은 차별적으로 혜택이 가고 특정 집단에는 손해가 전가될 수밖에 없는 게 강력한 개혁정책이다.

그러니 개혁의 칼을 휘두르려면 당장 신뢰를 단단히 다지는 게 우선일 수밖에 없다. 개혁은 신뢰라는 자산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에 신뢰를 중시했는데, 법가가 신뢰를 중시한 이유에는 경제적 문제도 컸다. 신뢰가 없으면 경제활력이 떨어지고 생산성이 커지지 못함을 알았다. 정부가 조삼모사식 정책을 일삼고 재량적 개입을 남발한다면 상인과 공인을 비롯해 많은 경제주체의 활동이 움츠러들고 거래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게 된다. 누구보다 부국강병을 중시한 법가는 생산력의 발전을 위해 우선 신뢰라는 자산이 든든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비자도 “작은 신뢰가 이뤄져야 큰 신뢰가 선다”고 했다.

법가가 강조하는 신뢰라는 창(窓)으로 우리를 보면 어떨까? 문재인 정부 들어 우려되는 게 위에서 잘못된 신호를 주는 일이 많아 보인다는 점이다. 그 잘못된 신호들이 사회의 신뢰라는 자산과 자원을 동나게 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조국 사태 때 많은 교수와 지식인이 조국 일가의 행위를 비호하고 옹호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수업뿐 아니라 시험과 평가마저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일이 많아진 상황에서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하는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났다. 그것을 보고 개탄하고 비난할 자격이 교수들에게 있을까 싶다. 그들은 조국과 조국 일가를 옹호하면서 학생들에게 신호를 줬다. 꼭 정직하게 시험을 보고 평가에 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줬는데, 잘못된 신호를 보내놓고서는 학생들의 행동에 혀를 찬다?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의사 정모씨에게 금고 8개월을 선고하고 도주 우려가 있다며 법정구속한 일이 있었다. 대장암 판정을 받은 사람에게 위험성 있는 약을 투여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한 것이다. 재판부는 민사소송을 통한 보상이 아니라 형사처벌을 강행했다. 바이털을 다루는 과(科)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질병을 다루는 특성상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데 법원이 아주 나쁜 신호를 의사들에게 준 것이다. 환자 생명을 다루는 현장에 가서 절대 일하지 말라는 신호 말이다.

위에서 주는 나쁜 신호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성범죄자들의 신상을 공개해 사적 제재 논란이 일고 있는 디지털교도소에 대해 사이트 차단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역시 사적 제재를 해도 된다는 나쁜 신호를 준 것이다. 폭력을 독점하는 대신 법률에 의거해 제한적으로 행사해야 근대국가다. 방송통신심의위의 결정은 대한민국이 근대국가임을 부정하고 공권력의 권위와 공권력에 대한 믿음을 우습게 한 일이 아닌가?

이렇게 계속 위에서 나쁜 신호를 주는 일이 빈번한데 그런 식이면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대로 한국은 ‘저(低)신뢰 국가’일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신뢰라는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데 위에서 자꾸 나쁜 신호를 주면서 신뢰 자원을 줄어들게 하면 어찌하나 싶다. 국토에 천연자원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신뢰라는 자원이 부족한 것이야말로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공자도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고 했다. 신뢰가 없으면 공동체가 설 수 없다고. 잘못된 신호를 주면서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은 이만 그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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