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이야기] (3) "서울사무소 설치"는 금지된 주장...정치에 짓눌려 비효율 방관

입력 2020-09-23 09:41   수정 2020-11-01 11:38

≪이 기사는 09월22일(09:26)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민연금법 27조가 미친 악영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조항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체제의 개편 논의를 가로 막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제기됐던 기금운용본부의 독립공사화와 기금 분할 운용 등이 대표적인 예다.

◆독립공사화, 기금분할 논의 무산에 일조

기금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이기 위한 독립공사화와 비대해진 국민연금의 과도한 국내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분산시키고 운용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금 분할은 국민연금기금의 규모가 100조원을 넘어선 2003년을 전후로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이미 오래된 논의임에도 이 아이디어들이 채택되지 않은 것은 근본적으로 정부가 자신의 권한을 제 손으로 내려놓느냐의 문제였던 것이 컸다. 독립공사화는 보건복지부 장관 등 공무원과 정부가 임명하는 각계 인사들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의 정부로부터의 독립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기업들 대부분의 대주주로 영향력이 막강한 국민연금을 분할해 제각각 운용하게 하는 것도 정부들 입장에선 꺼려지는 일이었다. 기업을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서다.

그럼에도 표면적으로나마 논의는 '이 정책이 과연 고갈이 예고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수익률을 높일 수 있느냐'란 질문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경제'와 '정치'가 적당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이 확정된 이후 이 모든 아이디어의 반대 근거로 '지역 균형 발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독립공사화와 기금분할이 기금운용본부의 서울 잔류, 기금운용본부가 2017년 2월 전주로 이전한 이후에는 서울로의 재이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이명박 정부의 바통을 받아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진 논의는 번번이 지역 여론에 기반한 반대에 부딪히며 무산됐다.

독립공사화는 박근혜 정부가 대통령 탄핵으로 무너지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죽은 아이디어가 됐다. 기금 분할 논의는 국민연금기금 규모가 700조원을 넘어 수년 내 1000조원대를 바라보게 되면서 학계서 제기되고 있지만 정치권 어디서도 이를 아젠다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를 들고 나왔다 정치적 역풍을 맞을까 두려워서다.

국민연금의 기금규모는 현재 2003년과 비교하면 약 7배, 국민연금법이 개정된 2013년에 비해선 2배 가까이 커졌다. 하지만 정부 입김에 좌우되는 기금운용체제는 변함이 없다. 이 모든 것이 '정치'가 '경제'를 누른 결과다.

◆"김용진 이사장이 극복할 과제"

거창한 체제의 변화가 아닌 기금운용본부 서울사무소 설치라는 간단한 방안 역시 마치 금기어처럼 여겨지고 있다. 2018년 정부가 학계, 업계 전문가들로 구성한 국민연금 기금운용발전위원회가 인력 유출로 인한 경쟁력 약화의 대안으로 서울사무소 설치를 제안했지만 당시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서울 등으로 기금본부가 가야 할 게 아니라 세계로 나가야 한다"며 "편의상 서울로 이전해야 한다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와 같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기금운용역들이 서울에 있어야 할 때 머물 거점을 만드는 것조차 거부하며 전주를 지키게끔 한 김 이사장은 올해 1월 이사장 직에서 중도 사퇴했다. 4월 총선에 국민연금이 자리잡고 있는 전주시 덕진구 지역구에 출마하기 위해서다. 총선에서 승리하며 그는 4년만에 국회에 재입성했다.

국민연금법 27조를 극복하는 것은 김 전 이사장의 중도 사퇴 후 8개월만에 자리를 맡은 김용진 신임 이사장이 풀어야 할 과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6월 국민연금이 오는 2040년 16조 1000억원 규모 적자로 전환되고, 14년 뒤인 2054년에 완전 고갈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동안 매년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인구 구조상 수십조원의 적립금이 쌓였지만 앞으로 20년 후면 국민연금이 한해 수십조원을 벌어도 손실로 까먹는 돈이 더 많아진다는 얘기다.

기금운용의 문제를 정치가 아닌 철저히 경제 논리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국내 최고의 실력자들이 모이는 '신의 직장'으로 되돌아가려면 적어도 서울사무소 설치와 같이 현행 국민연금법 하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조치를 과감히 단행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한 국민연금 출신 고위 관계자는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인 김 이사장에게 기대하는 것은 여론이나 정치적 압박에 휘둘리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며 "기금운용엔 정치가 개입되선 안된다"고 말했다.

(끝)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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