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 20세기 유럽의 위기 타개 교훈

입력 2020-09-22 17:59   수정 2020-09-23 00:37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친 세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을 겪었다. 엄청난 실업을 몰고 온 대공황도 경험했다. 그 시절 민주사회에 대한 위협은 오늘날의 그것에 비할 게 아니었다. 당시엔 소련 공산주의와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가 득세했다.

전쟁 세대에게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매우 위중하게 보이진 않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오늘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과거보다 훨씬 어렵다. 대부분 문제가 글로벌 거버넌스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기후 변화와 핵 위험의 문제를 겪고 있다. 두 문제 모두 계속 악화되고 있으며 인류의 존속을 위협할 만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단순히 개별 국가가 해결책을 내놓을 수는 없다. 국제적 기관을 통해 세계 각국이 함께하는 해결책을 마련해 대응해야 한다.

다른 문제들도 궁극적으로는 세계적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산업 자동화로 일어나는 부작용, 심각한 불평등이 그렇다. 개별 국가가 세금이나 각종 규제 정책을 내놓을 수도 있지만 이는 큰 효과를 낼 수 없다. 어떤 나라도 기업의 아웃소싱과 생산기지 이전 등을 100%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하면 글로벌 생산망에서 자국이 고립될 뿐이다.

요즘엔 자본이 국경을 넘어 다닌다는 점도 세계적 차원의 해결책이 필요한 이유다. 한 국가가 특정 자본에 대해 세금을 인상한다면 기대했던 세입액 대부분이 각종 회계기법을 거쳐 조세피난처 등을 통해 다른 나라로 흘러갈 것이다.

20세기 초에도 각국이 협력해 풀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당시 정책 입안자들은 거시경제 불안과 지나친 불평등의 확대 등 시장경제의 부작용을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봤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직장 안전규제와 기본 사회안전망 등 각종 제도를 만들었다.

20세기 초 각국은 세계 평화 유지와 현대적 복지국가 구축 등 주요 비전을 공유했다. 그리고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 각국이 개별적으로 정책을 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초래한 정치세력을 약화시키고 민주주의를 강화한 것도 이때다. 나라 간 평화를 유지한다는 비전은 국경을 넘어섰지만, 실현 방법 자체는 국가 차원에서 거시경제를 안정시키고 발전시킨다는 바탕에서 마련됐다. 각국이 민주국가로서 강력하게 발전하면 서로 협력도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유럽의 전후(戰後) 세대는 이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유럽에선 1951년 전쟁을 방지하고 각국 간 협력을 늘리자는 취지로 유럽 석탄철강공동체가 출범했다. 이 기구가 유럽연합(EU)의 시초가 됐다. 유럽은 초국가적 기관을 통한 협정으로 40년간의 민주적 번영, 국제 평화, 거시경제 안정을 비롯해 광범위한 번영을 이끌어냈다. 이렇게 많은 나라가 빠르고 광범위하게 동시에 경제 성장을 누린 일은 일찍이 없었다.

오늘날 문제는 이 같은 성과가 또 나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세계적 문제를 다룰 힘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국제기구와 기관은 이미 약화됐다. 각종 경고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오지만 위험을 대비하기는커녕 심각성조차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설상가상으로 요즘엔 코로나19 백신 배분 문제를 두고 국가와 지역 간 균열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번 코로나19 대유행 사태를 계기로 각 민주국가들의 초국가적 협력이 크게 증대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선 단순히 코로나19 사태를 넘어 세계가 맞닥뜨린 국제적 위기의 성격과 본질을 잘 이해해야 한다. 전후 유럽의 사례는 사회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선 각국이 먼저 비전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오늘날 국제사회에도 이 같은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 Project Syndicate

정리=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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