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칼럼] 전국민 고용보험제의 이면

입력 2020-09-24 17:10   수정 2020-09-25 00:12

몇 해 전부터 우리 사회에선 ‘A라 쓰고 B라 읽는다’는 표현이 자주 쓰이고 있다. 실제 내용이 겉보기와 다를 때 실제를 강조하기 위한 표현법 중 하나다.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 제목은 ‘부동산 대책이라 쓰고 증세라 읽는다’였다.

부동산 대책 못지않은 이슈 중에 전 국민 고용보험 확대 논란이 있다. 보험모집인, 택배기사 등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도 고용보험에 가입시키고 2025년까지 전 국민으로 대상을 확대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그러자면 보험료를 걷고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데 기준이 되는 가입자 소득을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지난 23일 관계장관회의(녹실회의)를 열고 ‘소득파악 체계 구축 방안’을 논의한 이유다.
전국민 부담 증가로 귀결
1995년 도입된 고용보험은 가입 대상이 사업장에 채용된 임금근로자다. 자영업자도 희망하면 길은 열려 있지만 지난 7월 말 기준 2만8555명만 가입해 있다. 가입률은 0.5%도 채 되지 않는다. 임금근로자는 소득이 사업장을 통해 간단히 파악된다. 임금은 물론 각종 수당과 성과급, 교육비까지 빠질 틈이 거의 없다. ‘유리알 지갑’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에 비해 자영업자와 개인사업자의 소득 파악은 간단치 않다. 국세청이 여러 과정을 거쳐 확인한다고는 하지만 임금근로자에 비해 파악률이 크게 떨어진다. 2016년 국세청 발표에 따르면 자영업자 소득 파악률은 72.8%, 근로자는 93.4%다.

법률상으로 자영업자와 비슷한 특고 종사자도 소득 파악이 쉽지 않다. 현재로선 국세청에서 일부만 파악하고 있다. 기업체 같은 법인 사업자가 번역, 배달, 대리운전 등 인적 용역 서비스를 이용하고 대가를 지급할 때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한다. 그러나 사업소득세를 내는 특고 종사자의 업종은 지금 정부가 고용보험 가입 확대를 논의하는 특고 종사자 범위보다 훨씬 좁다. 정부가 부랴부랴 소득파악 체계를 구축하는 일에 매달리는 게 이해된다.

사업소득세 원천징수 의무가 있는 기업은 그렇다 치더라도 개인이 용역 서비스를 이용하고 대가를 지급하는 경우는 파악할 방법이 없다. 플랫폼 서비스가 그렇다. 배달 앱을 이용할 때 배달료는 소비자가 직접 낸다. 플랫폼 종사자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자면 배달료 수입이 파악돼야 한다. 정부는 지금도 금융회사, 과세당국의 정보를 결합하면 플랫폼 이용 정보와 소비자의 신용카드 사용 금액은 확인 가능하다고 한다.
소득파악보다 국민동의가 우선
그 말대로라면 스마트폰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소비자도 ‘고용보험료’를 낼 가능성이 커진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절반씩 내는 고용보험료 중에서 배달 라이더의 사업주 몫은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고 종사자들은 사회보험료와 세금 부담으로 소득이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사회보험은 ‘능력에 따른 부담’을 강조하지만 어디까지나 원칙일 뿐이다. 건강보험료, 장기요양보험료 등 사회보험료가 줄줄이 오르는 마당이니 피하고 싶은 유인도 더 커졌다. 정부 기관이 징수망을 촘촘하게 구성하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이유다. 연말정산 때 근로자들이 제출하는 서류만 봐도 그렇다. 신용카드 사용처, 금액은 물론 종교나 지지 정당까지 파악할 수 있다. 방대한 개인정보가 넘어가는 만큼 ‘빅브러더’라는 비유가 나올 정도다.

정부가 전 국민 소득파악 체계를 구축한다고 나선 이상 이제 ‘전 국민 고용보험제’라 쓰고 ‘전 국민 부담 증가’로 읽히게 될 것 같다. 그런데도 부담 주체인 국민 동의 얘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js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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