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의 의미' 풍자했던 학자, '공부의 의미'로 다시 오다

입력 2020-09-28 15:40   수정 2020-09-28 16:04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거기에 대해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2018년 9월 22일 경향신문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중에서)


2년 전, 추석에 가족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오가는 ‘살벌한 대화’의 의미를 날카롭게 풍자했던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사진)가 이번엔 ‘공부의 의미’를 성찰한 책《공부란 무엇인가》를 들고 나왔다. 지난 8월말 나온 후 꾸준히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 20위권에 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공부, 교육 분야 책을 고르는 독자들이 많아졌다. 추석에도 집콕이 이어진다 해도, 학생과 학부모의 스트레스가 없어질 리는 없다.

김 교수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역시 우문에 현답이었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직접 만나 인터뷰했을 것이다. 코로나19 시국이 더욱 원망스러워졌다.
▷무엇인가 물어볼 때 “이 사람에겐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력에 부딪칠 때가 많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이런 상황에 처하신 적 있으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그런 상황에 처했던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다만 질문을 하거나 질문을 받을 때 저는, 과연 저것이 정확한 답을 기대하는 질문인지, 그렇지 않으면 단지 반응을 얻기 위한 질문인지를 구별하려고 합니다. 전자는 학자들이 연구를 설계할 때 주로 던지는 질문입니다. 후자는 아마 면접시험 때 면접관이 주로 던지지 않을까요? 요컨대, 진짜 대답을 바라는 경우와 반응을 바라는 경우가 다르겠지요. 기자들의 인터뷰 질문에는 그 두 종류가 섞이곤 하더군요.
▷한국에 왜 ‘학문의 드레스 코드’는 없는 걸까요?
▶《공부란 무엇인가》에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꼭지가 있지요. 거기에 보면, 정작 서평 대상이 된 책 이야기는 별로 언급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실려 있습니다. 토론 시간에 주제에 맞지 않는 장광설을 늘어놓곤 하는 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도 실려 있습니다. “학문의 드레스 코드가 없다”는 말은 그런 현상들을 지칭하신 걸로 이해했습니다. 왜 비평과 토론의 장이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을까요. 어쨌거나, 그런 문제에는 일종의 권위 의식이 깃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상대, 청중, 상황보다는 말하는 자신 혹은 자신의 권위가 너무나 소중하면 일어날 수 있는 현상 같습니다. 적절한 상황, 청중, 장르에 맞게 자기 이야기를 조율하는 것 역시 공부의 중요한 부분 같습니다. 시민의 중요한 덕성이기도 하고요. 이 공부가 부족할 때 논의의 장이 난장판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 같습니다.
▷학생들은 새로운 대상을 만나거나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왜 스스로 버리고 있을까요? ‘어른들이 버린다’ 하기엔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버리는 것 역시 많아 보입니다.
▶책에서 이야기했듯이, 새로운 대상 혹은 새로운 경험을 추구한다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와 용기가 드는 일입니다. 만약 학생들에게 새로운 대상과 경험을 추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그저 살아남는 일에만도 이미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혹은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는 생존의 불안감이 너무 크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용기를 내기 어려울 정도로 성취의 경험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고요. 새로운 경험이 상당한 활력과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성장 과정에서 느낄 수 있게끔 학교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경험을 맛보고 나면, 마치 중독된 것처럼 스스로 그런 경험을 찾아 나설 수도 있겠지요.
▷자기계발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기계발서의 정의에 따라 다를 텐데요.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충실하다면,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계발하되, 타력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동기부여하고 노력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개인의 노력으로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것을 자기계발서가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결국, 자기계발서도 어떤 자기계발서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언택트 시대의 아우라(Aura)란 무엇일까요? 과연 논할 수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아우라는 발터 벤야민의 예술작품 논의와 함께 많이 거론되지요. 기술을 통해 예술작품의 대량 복제가 가능해지면, 기존의 예술작품이 누렸던 독특한 분위기와 힘이 상실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수업을 못하고 비대면 수업을 해야만 할 때, 저는 아우라에 관한 질문을 “과연 대면 수업의 독특한 분위기와 힘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전시 기획자나 예술가들이 온라인으로 대면 전시를 대체할 때 과연 작품의 아우라를 유지시킬 수 있을까 묻듯이, 선생은 비대면으로 학생을 만났을 때 과연 무엇을 잃어버리게 될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대면 수업이야말로 이 시대의 새로운 뉴노멀”이라고 서둘러 선언하기 이전에, 과연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교육 당국자들이 좀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아우라, 어떤 영감, 어떤 배움의 즐거움을 잃고 있는지를 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대면수업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면, 새로운 환경에 맞게 아우라가 재정의될 수 있겠지요. 혹은, 대면 수업에서 가능한 아우라는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아주 특권적인 경험으로 변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든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저는 이 질문을 과연 비대면 상황에서 영감(inspiration)을 충분히 줄 수 있는 수업을 할 수 있느냐 여부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영감을 주는 수업이 전에 비해 한층 더 어려워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인터넷 강의와 학교의 대면 강의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믿습니다. 대면 수업을 통해 가르치는 자와 배우자는 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저는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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