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한의 말보다 행동을 봐야 한다

입력 2020-09-29 16:16   수정 2020-09-29 22:26

개성연락사무소가 폭파된 지 세 달 만에 발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살 사건은 한국을 졸(卒)로 보는 조선노동당의 망나니짓이다. 통일전선부 통지문에서 김정은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는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한다. 그러나 통지문은 뺨 때리고 어르는 격일 뿐이다. 엎지른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듯이, 사과를 받는다고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지는 않는다.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지 말고 귀에 거슬리는 말은 경청해야 한다는 게 오랜 남북대화의 교훈이다. 선전선동에 능한 북한은 국면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말장난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멀게 했다. 북한의 달콤한 속삭임과 현란한 어휘는 마약처럼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켰다.

김일성은 북핵협상이 한창이던 1992년 신년사에서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말했다. 같은 해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단과의 오찬 연설에서는 “주변의 큰 나라들과 핵 대결을 할 생각이 없으며 더욱이 동족을 멸살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했다. 밥 우드워드 기자의 책 《분노(Rage)》에 따르면, 마이크 폼페이오를 만난 김정은도 “나는 아버지다. 나는 내 아이들이 남은 인생을 핵무기를 짊어지고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오늘의 상황은 이 모든 말이 완전한 거짓이었음을 웅변한다. 우리는 북한의 행동에 주목해야 하고 결과로 입증된 말만 믿어야 한다. 핵보유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했다는 김정은의 2018년 신년사는 맞는 말이다. 우드워드 기자가 소개한 “김정은에게 핵은 너무 사랑해서 팔 수 없는 집과 같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도 현실과 일치한다. 목숨처럼 소중한 것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니까 북한의 권정근 외무성 미주국장이 “비핵화라는 개소리는 집어치우는 것이 좋다”고 한 것이다. 조선노동당이 지배하는 한 북한의 핵포기는 불가능하다.

통전부의 담화는 2008년 박왕자 씨 피살 사건의 대처방식과 비슷하다. 당시 북한은 우리 측의 공동조사와 책임자 처벌 요구를 거부한 채,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과 조선아태평화위원회의 공동보도문 형식으로 “김정일의 특별조치에 따라 관광에 필요한 모든 편의와 안전이 철저히 보장될 것”이라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우리 국민에게 총격을 가한 북한 군인은 통일 이후에도 반드시 색출해서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9·19 군사합의서가 도마에 오른다. 개성연락사무소 폭파도 그렇지만 국민을 사살한 행위가 합의 위반이 아니라면 그런 합의서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많은 국민이 과연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헌법적 책무를 다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대북정책의 방향을 국민의 안전과 행복에 맞추고 기본 가정부터 다 바꿔야 한다.

김영삼 정부의 전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김 대통령은 취임 초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낫지 않다”면서 비전향 장기수를 북으로 돌려보내는 파격적 행보를 하다가 북핵문제가 심각해지자 대북정책을 전면 수정했다. 그 덕택에 퇴임 후에 대북정책으로 비판받는 일은 없었다. 정책을 수정할 여력이 있을 때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중국공산당과 중국인을 구별하는 세계사적 흐름에 맞게 조선노동당과 북한주민을 구분해서 ‘투 트랙’의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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