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지나면 된다"…추미애의 '침대축구'[이동훈의 여의도 B컷]

입력 2020-09-30 19:09   수정 2020-10-06 13:46


중동 축구하면 처음 떠오르는 것은 오일머니(oil money)를 기반으로 한 '침대축구'다.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지면 '부상'을 핑계로 한없이 축구장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축구 실력보다는 아픈 척하는 '연기력'과 페어플레이 정신 따윈 안중에 없는 '뻔뻔함'이 필요하다.

중동팀들이 수십년동안 써온 전략이지만 특별한 파훼법이 없어서 더욱 약이 오른다. 자칫 상대팀이 평정심이라도 잃을 때면 아프다고 누워 있던 선수가 벌떡 일어나 역습에 나서기도 한다. 결국 침대축구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주지 않거나, 침대 축구를 할 때 압도적인 실력으로 골을 넣어야 한다. 페어플레이를 찾거나, 심판의 공정한 진행만 기다리다가는 패배하기 십상이다.

정치판에서도 침대축구는 있다. 의혹이 제기됐을 때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하나마나한 답변을 돌려 막으며 이슈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다. 가끔 아프다고도 연기도 하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축구장이나 정치판이나 전략은 비슷하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부터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인사청문회 때부터 아들 서씨의 군복무 특혜 의혹을 제기해왔다.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이슈는 추 장관 아들의 군 복무 특혜였다.

그 기간 동안 추 장관의 답변은 같았다. 휴가 연장이든, 통역병 선발이든 청탁하지 않았고, 아들은 적법하게 휴가 연장을 했다는 것이었다. 보좌관이 군대에 연락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검찰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자고 일관되게 밝혔다. 그러면서 시간은 흘렀다.

지난 28일 검찰에서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아들 서씨를 비롯해 '군 휴가 미복귀'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리했다. 추 장관이 보좌관을 통해 부대에 전화를 하게 했지만 부정청탁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서씨의 부대지원 장교가 휴가를 '승인한 적 없다'고 진술했지만, 서씨의 '구두 승인 받았다'에 손을 들어줬다.

대정부질문 내내, 아니 인사청문회 때부터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추 장관의 아들 군 휴가 특혜 논란은 검찰이 추 장관 등에 면죄부를 줌으로써 일단락 됐다.

비록 인사청문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대정부질문에서 보좌관에 부대에 전화하라고 시키지 않았다는 추 장관의 발언은 거짓말로 드러났지만 법적 처벌은 없다. 인사청문 대상자는 위증죄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고 법사위 전체회의와 대정부질문에서는 증인 선서 절차가 없었어서 위증죄의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추 장관에게 '거짓말쟁이', '의원 갑질'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줄 수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들 면전에서 '소설 쓰시네' 혹은 '검사해서 안될 사람' 등의 구설을 거리낌없이 내뱉었다. 노골적인 검찰 인사 역시 강행하며 문재인 정권 관련 수사를 하던 팀을 여럿 해체시키기도 했다.

인사청문회부터 대정부질문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지났다. 경기로 따지면 막 전반전이 끝난 상황이다.

국정감사는 추 장관 아들 군 복무 특혜를 밝히는 후반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국정감사를 앞두고 검찰 조사가 발표됐고, 추 장관의 답변 가이드라인이 완성됐다. 국정감사 기간 동안 쏟아질 질문에 아마도 '보좌관에게 전화하라고 한 것은 인정하되, 청탁은 아니었다'라거나 '아들의 휴가는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것으로 이미 검찰에서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등의 답변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추 장관에게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졌고, 이제부터는 약 3주간의 시간만 보내면 될 일이다.

한국 축구는 그동안 숱하게 중동의 침대 축구에 당해왔다. 아시아 스포츠계에서 정평난 오일머니 앞에 심판의 판정은 한없이 너그러워졌다. 우리는 그렇게 패배해왔다.

하지만 침대 축구에 항상 무릎 꿇지만은 않았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게임 동메달 결정전 때 침대 축구에 통쾌하게 설욕한 기억은 남아 있다. 전반에 2골, 후반에 1골을 내주며 3대1로 패색이 짙어진 가운데 이란 선수들은 축구장을 집 삼아 하나 둘 누웠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경기는 후반 33분 박주영의 골이 들어가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후반 43분과 44분 지동원의 연이은 헤딩슛으로 경기는 뒤집혔고, 경기내내 아프다고 누워있던 이란의 골키퍼는 경기 막판 동점을 노리기 위해 우리 지역 페널티까지 뛰어나왔다. 국가대표팀은 이란 선수들이 누워있던 침대를 뒤집어 버렸고(?) 결국 역전승했다.

이번 국회 국정감사는 추 장관의 열성 지지자나 반대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달갑지 않을 것이다. 도돌이표 답변, 도돌이표 질문이 계속될테니 말이다. 역공을 맞든, 누워있다가 허겁지겁 달려가든 예상 외의 모습을 보길 기대해본다.

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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