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탈원전 운명, 감사원에 달렸다

입력 2020-10-05 17:36   수정 2020-10-06 00:25

아무리 문제를 지적해도 이 정부한테는 ‘쇠귀에 경 읽기’ 같은 게 있다. 탈원전이 대표적이다. 케케묵은 이슈를 지금 와서 다시 꺼내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감사원의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감사 결과 발표를 눈앞에 두고 여권 등 집권세력이 보이는 행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다.

국가채무도 그렇지만 탈원전도 결국 ‘속도의 문제’다. 재정 과속처럼 탈원전도 ‘속도전’으로 밀어붙여 수많은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 문제 핵심이다.

급격한 탈원전 정책에 변화를 줄 몇 번의 계기가 있긴 했다. 그때마다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일말의 기대를 걸어본 건 작년 1월 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간담회에 기업인들을 초청했다. 경제 어려움을 듣자는 취지였다. 탈원전으로 직격탄을 맞은 창원지역을 대표해 창원상공회의소 회장도 참석했다. 창원은 원전으로 먹고사는 협력업체 수백 곳이 밀집한 지역인데, 탈원전으로 일감이 끊기면서 지역경제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일각에선 이런 관측이 흘러나왔다. 고통받는 지역 중소기업인의 요청을 받고 정부로선 마지못한 척하고 (최저임금에서 그랬던 것처럼) 탈원전도 속도 조절을 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였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멈춰선 신한울 3·4호기라도 짓게 해달라는 중기인의 절절한 호소에도 대통령은 꿈쩍하지 않았다. 탈원전 정책의 재검토는 없을 것이라고 아예 못 박았다. 그때부터 정말 궁금해졌다. 이 정부가 탈원전에 대해서만큼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까닭이 도대체 뭘까.

항간에선 반원전 영화에 감동한 문 대통령이 탈원전 강경주의자가 됐다는 얘기가 나왔으나, 실은 정권 핵심부에 ‘원전 마피아’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이 자리잡고 있는 게 컸다. 이유가 뭐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원전산업을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망가뜨려도 될 정도는 아닐 것이다. 탈원전 과속으로 인해 연관 산업이 입은 천문학적 피해, 수많은 일자리의 공중분해, 원전 해외사업 차질 등 부작용을 일일이 언급하려면 한 페이지로도 부족하다.

감사원의 월성 원전 감사 결과 발표가 이틀 앞(8일)으로 다가왔다.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2년 전 조기폐쇄 결론을 내린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논란이 이어지자 국회에서 감사원 감사를 요구했던 사안이다. 감사 결과는 탈원전 정책의 시시비비를 가릴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조기폐쇄 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졸속 탈원전 정책의 결정적인 증거가 될 뿐 아니라, 백지화된 신한울 3·4호기까지 불똥이 튈 것이 뻔하다. 그만큼 핵폭탄급 위력을 갖고 있다.

발표를 앞두고 탈원전단체가 최재형 감사원장을 감사하라며 공격하고,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피감자들이 뒤늦게 “감사원의 강압조사에 따른 것”이라며 진술을 번복하는 등 조직적인 반발이 있는 것을 보면 뭔가 수상쩍은 게 분명하다. 백운규가 누군가. 특허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던 실용 공과대 교수가 탈원전 공약 입안에 참여한 공로로 일약 산업부 장관에 발탁되자마자 산업부 에너지 라인을 대거 숙청하고, 탈원전 정책을 맨 앞에서 밀어붙인 장본인 아닌가. 산업부 공무원들은 이때를 부처 역사상 가장 절망적인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명색이 장관까지 지낸 사람이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뭐가 무섭다고 강압에 못 이겨 진술을 했다는 건가.

조직적 반발에 감사 결과 발표가 불투명하다는 얘기가 들리지만 결과는 한 치의 왜곡도 없이 공개돼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깨끗이 매듭짓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놔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언젠가는 탈원전 정책 관련자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최 감사원장의 결기를 믿는다.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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