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산·고파도…마음이 답답한 날, 훌쩍 섬으로 떠나고 싶다

입력 2020-10-06 15:19   수정 2020-10-06 15:21


가을을 맞은 섬은 고적하고 정갈하다. 생명의 근원이 숨어 있고 우리 삶의 원형질이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섬이다. 여행이 간절해질 때 방역지침을 잘 지키고 떠난다면 자연의 온전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와 섬사람들의 소박한 삶이 남아 있는 섬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이순신 장군의 요새 여수 돌산도
여수 여행자들이 돌산도를 섬으로 느끼기는 쉽지 않다. 육지와 연결된 다리가 두 개나 되고 잠깐 사이에 건너갈 수 있으니 그냥 여수의 연장일 뿐이다. 하지만 돌산은 섬이다. 돌산을 가지만 우리는 돌산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돌산 갓김치와 향일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돌산도는 그보다 더 깊은 역사와 문화가 깃들어 있는 섬이다. 돌산도는 한때 돌산군이란 행정 단위였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그냥 한미(寒微)한 섬이 아니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여산현(廬山縣)’이 있었지만 백제와 고려 때는 돌산현(突山縣)이 설치됐던 것으로 보아 돌산(突山)이란 이름은 유래가 깊다. 섬의 산에 돌이 많이 쌓여 있어서 돌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고 뱃길을 가다 갑자기 큰 산이 쑥 나오는 곳이라 해서 돌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순천도호부나 남원부 순천군에 소속됐던 돌산에 군이 설치된 것은 1896년 2월이다. 섬 지역에 군을 설치하는 칙령이 반포되면서 신안군의 모태인 지도군과 완도군, 그리고 돌산군이 설치됐다. 돌산도 군내항 부근 서외 마을에는 방답진(防踏鎭)의 선소 터가 남아 있다. 전함을 만드는 조선소가 있었던 곳이다.

방답진은 조선시대 돌산도에 설치된 전라좌수영 산하 수군진이었다.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거북선이다. 하지만 전쟁 당시 활용된 거북선은 고작 세 척뿐이었다. 방답진 선소는 그중 한 척의 거북선이 만들어졌던 곳이다. 나머지 두 척은 전라좌수영 본영 선소에서 이순신 장군이 직접 만든 영귀선과 여수 시전동 선소의 순천 귀선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 결과를 보고한 장계에도 ‘동진(방답진) 거북선 격군과 수군 2명이 부상당했다’는 내용이 있다.

방답진 선소는 외부의 적이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게 은폐돼 있는데 바로 건너편에 길게 뻗은 섬 송도가 가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선소 터는 굴강(掘江)인데 현재는 서외마을 어민들이 어선을 정박시키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굴강은 개골창 물이 흘러나가도록 길게 판 내를 이른다. 곳곳에 선박의 수리, 정박 등을 목적으로 인공적으로 조성했었다. 방답진 선소는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어 적의 도발을 견제하는 동시에 즉각 출동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

방답진 동헌은 돌산읍사무소 건물 뒤안에, 군관청 건물은 읍사무소 건너편에 있는데 아직까지도 건재하다. 1872~1895년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군내리에는 방답진 설치 뒤 아사향청, 순교청, 장교청, 서기청, 형리청, 사령청 등의 관아가 있었는데 모두 소실됐고 지금은 군관청과 동헌만 남아 있다. 방답진이 폐영되고 돌산군이 설군된 뒤에는 대부분 돌산군 행정 관아로 사용됐다. 1872년 작성된 ‘방답진지도’에는 현재 군관청 자리에 배를 묶어두던 곳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지금은 육지가 된 땅이 예전에는 바다였을 것이다. 군관청은 조선시대 말까지 형리들의 숙소로 사용됐다.
섬을 살찌우는 굴 천국 서산 고파도

채워도 채워도 허기진 날에는 고파도로 간다. 허기져도 괜찮은, 고파도 괜찮은, 섬으로 간다. 채울 길 없는 허기를 채우지 않아도 되는 섬. 한껏 비워도 되는 섬. 고파도는 서산의 구도항에서 뱃길을 따라가는 가로림만 안의 섬이다. 가로림만 안에는 고파도를 비롯해 웅도와 우도, 분점도 등의 유인도가 있다. 굴과 바지락이 고파도 사람들의 살림 밑천이다. 봄여름은 바지락이, 가을과 겨울은 굴들이 섬을 살찌운다. 바지락 밭은 더없이 풍성하다. 바지락 철에는 한 달에 15일 이상을 작업하는데 평균 하루 2t, 연평균 200t 이상을 수확한다.

참 대단한 갯벌의 생산성이다. 바지락은 공동 작업을 해서 수익은 공평하게 나눈다. 모든 먹거리가 그렇지만 바지락 또한 그 자리에서 먹는 것이 맛이 월등히 뛰어나다. 이동거리가 멀어서 많이 굴릴수록 맛이 떨어진다. 바지락 또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여러 유통 단계를 거치는 것보다 직거래로 먹을 수 있다면 훨씬 뛰어난 맛의 바지락을 맛볼 수 있다.

고파도 굴 양식의 90%는 반수하식이다. 남해안 굴처럼 내내 바닷속에 잠겨서 크는 것이 아니라 물의 들고 남에 따라 물속과 물 밖에서 반반씩 자라게 하는 것이 반수하식이다. 그래서 고파도 사람들은 햇볕을 더 많이 받는 반수하식 굴이 더 맛있다고 주장한다. 가을, 겨울 굴 철이면 섬에서는 하루 20~30깡 정도의 굴이 출하된다. 1깡은 20㎏이다. 할머니들은 쉬지 않고 기계처럼 굴을 잘도 깐다. 고파도의 굴들은 알이 작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가로림만의 조류가 워낙 세기 때문이다.

강한 조류에 시달리다 보니 많이 크지는 못하지만 알이 단단해지면서 맛도 깊어진다. 굴은 보통 1년 반 정도를 기른 뒤 출하한다. 2~3년 되면 굴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섬은 동서로 기다란데 사람들은 주로 북쪽 마을에 몰려 살고 있다. 선착장이 있는 마을은 서산편, 언덕 너머 남쪽 마을은 태안편이다. 서산과 태안이 보이는 방향을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태안편 마을에는 갈대 무성한 작은 습지가 있다. 본래 100마지기나 되는 간척지 논과 염전이 있던 자리다. 주민들은 습지에서 생기는 모기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둑을 터서 바다로 되돌려 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태안편에서 오른쪽 샛길로 10여분 걸어들어 가면 고파도 해수욕장이다.

글/사진 강제윤 < 시인·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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