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유화학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2분기 매출 1조263억원, 영업이익 1201억원(연결 기준)의 실적을 냈다. 당초 증권사들은 코로나19 여파로 주력 제품인 합성고무 수요 감소에 따라 영업이익이 1000억원 안팎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금호석유화학은 시장 기대치를 20%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증권업계는 올해 금호석유화학이 2010년 이후 10년 만에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실적에 힘입어 주가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선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의 선택과 집중을 통한 ‘내실 경영’이 코로나19라는 최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1970년 한국합성고무라는 사명으로 출범한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코로나19 위기를 발판 삼아 세계 최고의 화학 전문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이다.
홀로서기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외부 환경 속에서 온전히 사업에 몰입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었지만 사업 안팎으로 수많은 갈등이 빚어졌다. 박찬구 회장은 형인 박삼구 전 회장과 이른바 ‘형제의 난’으로 갈등을 겪기도 했다. 2015년 12월 대법원이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유화학은 별개 그룹이라고 인정하며 법적으로도 계열 분리가 마무리됐다.
박찬구 회장과 금호석유화학그룹 임직원들은 계열 분리 이후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영업성과’와 ‘주주가치 제고’라는 기업의 본질에 더욱 집중했다. 계열 분리 이듬해인 2011년 매출 6조4000억원, 영업이익 약 8400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실적을 내면서 독자경영 궤도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2010년부터 그룹을 독자 경영해온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 아래 금호피앤비화학, 금호미쓰이화학, 금호폴리켐 등 계열사를 운영하며 그룹을 화학 전문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0년 박찬구 회장 취임 직전 2만원대였던 금호석유화학 주가는 이달 초 11만원대까지 다섯 배 이상 올랐다.
두 차례 석유 파동과 1998년 외환위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 온 금호석유화학에도 올해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왔다. 코로나19 여파로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줄면서 글로벌 화학기업들은 올 상반기에 처참한 성적표를 거뒀다. 금호석유화학은 이 위기를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기회로 활용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주력 제품인 타이어용 합성고무 부문 매출이 줄었지만 NB라텍스 매출이 코로나19 이후 급증하며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 NB라텍스는 라텍스 보건용 위생장갑의 원료다. 금호석유화학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다. 지금까지 라텍스 장갑은 병원 수술실이나 공장 생산라인 등 특정 현장에서만 사용되는 장갑으로 여겨졌다. 코로나19 이후엔 식당과 공공장소에서도 장갑을 착용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코로나19로 완성차업체들이 생산기지를 셧다운(일시 가동 중단)하고 타이어 수요가 급감하자 금호석유화학은 설비를 전환해 타이어 원료 비중을 축소하고 NB라텍스 생산 비중을 늘렸다.
금호석유화학은 합성수지 부문에서도 새로운 기회에 주목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소재 경량화 및 전장(電裝) 기술에 필수적인 차세대 플라스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어서다. 금호석유화학은 폴리스티렌(PS)과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ABS),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등 가벼우면서도 강도와 내구성이 우수한 제품을 중심으로 제품군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전방산업 수요 회복에 대비해 타이어 품질을 대폭 높이는 연구도 하고 있다. 단열 성능을 기존 제품보다 한층 끌어올린 새로운 블랙 폴리스티렌(EPS) 제품과 준불연 EPS 패널의 연구를 마치고 올해부터 상용화에 나설 방침이다.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CNT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합성고무, 합성수지 등 주력 제품과의 융합 시너지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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