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르는 '변론권 침해' 논란에 뿔난 변호사들

입력 2020-10-07 14:22   수정 2020-10-07 14:30

수사기관이나 법원으로부터 변론권을 침해당했다며 변호사들이 반발하는 일이 최근 자주 발생하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과 직결되는 변론권 침해 행위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방청권 못 받아 입정 못한 변호사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라임자산운용 사태’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김정철 변호사가 지난달 한 피고인의 형사재판 방청을 거부당한 사건과 관련, 지난 5일 서울남부지방법원과 법원행정처에 시정조치와 재발방지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라임 사태’ 핵심 피고인인 장모 전 대신증권 반포WM센터장의 재판에 피해자 측 변호사가 입정을 거부당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다.

김 변호사는 고소장 진정성립에 대한 증언을 하기 위해 검찰 측의 요청을 받아 법정에 출석하려 했다. 하지만 추첨을 통해 방청권을 배부받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법원 경위에 의해 입정을 제지당했다. 김 변호사는 “법정에서 증언을 하거나 피해자의 진술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방청하여 재판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데, 이를 제지하는 것은 변호인의 정당한 변론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재판부는 방청을 불허했다. 법원은 재판이 다 끝나갈 무렵에야 김 변호사를 불러 증인신문을 했다. 김 변호사는 앞서 재판 과정에서 무슨 진술이 오갔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증언을 하고 귀가해야 했다. 서울변회는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공개재판주의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형사소송법과 범죄피해자 보호법상 변호인의 정당한 변론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남부지법은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 5일 “검찰이 사전에 재판부에 증인으로 신청하지 않아 재판부로서는 김 변호사가 증언을 위해 법원에 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지침에 따라 법정에 다수가 모이게 되는 재판을 지양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방청을 제한하게 됐다”며 “한편 법정 방청의 문제는 재판장의 고유 권한”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법원이 “(이번 사건의) 기소된 범죄는 자본시장법 위반 등으로 법률적으로 '피해자'를 상정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고 덧붙여 2차 논란이 일고 있다. ‘피해자 대리인이 피해자 관련 재판을 지켜볼 수 없게 된 셈이라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는 변호사들의 반발에 대해 재반박한 것으로 보인다. 남부지법은 김 변호사를 ‘피해자 대리인이라고 주장하는 변호사님’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이후 SNS에 “범죄피해자보호법에서 ‘범죄피해자’를 ‘타인의 범죄행위로 피해를 당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개인적 법익의 범죄로 한정하지 않는다”며 “사회적 법익을 보호하는 법이라는 이유로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의 투자자는 피해자라 볼 수 없다는 남부지법의 판단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자본시장법 위반 재판을 주로 다루는 남부지법에서 피해자 개념에 대해 이 같은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며 “재판이 ‘당사자주의’로 가야 하는데 법원이 아직도 ‘직권주의’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직권주의란 소송의 주도적 위치가 법관에 있는 것이고, 당사자주의란 검사와 피고인 등 소송 당사자들에게 주도권이 있는 것을 말한다.
서울변회, 8월에도 ‘변론권 침해’ 우려 지적
변론권 침해 논란은 이번 뿐만이 아니다. 서울변회는 지난 8월에도 “다양한 형태의 변론권 침해행위가 최근 지속되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며 비판 성명을 낸 바 있다.

가령 지난 5월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의 변호인에 대해 의정부지검 검사가 영장도 없이 몸수색을 시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사건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도 “헌법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법”이라고 강력 반발한 바 있다.

지난 7월엔 서울중앙지검이 ‘채널A 강요미수 의혹’ 수사와 관련해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를 소환조사 하면서 이 전 기자 변호인의 수사 참여를 거부한 점도 논란이 됐다. 서울변회는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 피해자를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가 온라인 등에서 각종 공격을 받는 것도 변론권 침해라고 봤다.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차만 마시는 거다’며 피의자 등에게 변호인 없이 출석을 요구하거나, 조사를 하면서 사건 관계인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경우도 있다”며 “사건 관계인 입장에선 검사나 수사관의 말을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만큼 정당한 변론권을 침해받는 상황들”이라고 했다. 다른 변호사는 “여전히 접견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검찰청이 많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공교롭게도 최근 "야당 인사의 대리인 혹은 여권이 껄끄러워하는 사건의 변호인들이 권리를 침해받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는 것이 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변호사단체에서 성명을 냈을 만큼 ‘변론권 침해 논란’이 일었던 사건들이 ‘민경욱 전 의원 사건’ ‘채널A 강요미수 의혹 사건’ ‘박원순 성추행 의혹 사건’ 등이기 때문이다. ‘라임 사태’도 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이 연루된 만큼 정권으로서는 아킬레스건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경우 검찰에서 조사받는 시간보다 조서를 검토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며 “우연일 수 있지만 여권 인사의 경우 ‘특혜 논란’이 일 정도로 변론권이 충실히 보장되는 것과 대비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반면 한 변호사는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 사건의 경우 변론권 침해 문제가 공론화도 안되고 더욱 심각하다”며 “이번 논란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기 보다 국민의 기본권과 연결되는 변론권을 제대로 정립하는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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