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처럼 블렌딩하는 '빈티지 된장'…최고 셰프들 홀린 죽장연

입력 2020-10-07 17:06   수정 2020-10-08 09:52

경북 포항 시내에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 시간가량 차로 달리자 골짜기 마을 죽장면 상사리가 나왔다. 해발 450m. 휴대폰 신호가 희미해질 때쯤 멀리 장독 수백 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국내외 유명 레스토랑 셰프와 프리미엄 식품 유통사를 사로잡은 된장 제조업체 ‘죽장연’ 공장이다.


정연태 죽장연 대표(55)는 “우리 전통장도 와인처럼 생산 연도와 숙성 방법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며 “서로 다른 빈티지 된장을 블렌딩한 신개념 블렌딩 된장을 곧 선보인다”고 말했다.

죽장연은 마을 이름 ‘죽장면’과 ‘자연’을 결합해 만든 회사명이다. 2010년 정 대표가 이 골짜기 66만1167㎡(20만 평) 터에 전통장 생산시설을 마련했다. 공해가 없고, 일교차가 큰 데다 하루종일 햇볕이 잘 드는 지역이라 장을 담그기엔 최적의 장소로 꼽히는 곳이다.


정 대표와 죽장면의 인연은 특별하다. 1995년 부친인 정봉화 영일기업 회장이 포스코 포항사업장 내 운송을 전담하던 시절 죽장면과 ‘1사 1촌’ 자매결연으로 연결됐다. 영일기업은 고추와 사과 수확기에 부족한 일손을 돕거나 농기계를 무상 수리해주는 등의 활동을 했다. 마을 주민들은 매년 장을 담가 영일기업 직원이 먹을 1년치 물량을 선물로 보냈다. 10여 년간 인연이 이어지면서 주민들은 농한기에 일할 기회가 생겼다. 자연스럽게 죽장면에 전통 장 사업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됐다.

정 대표는 미국 남일리노이주립대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오리온 등에서 외식업 등을 추진한 경험을 살렸다. 그는 “한국적인 맛이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죽장연 시작 때부터 설비는 현대식으로 하되, 제조 방법은 전통 방식을 고집했다. 죽장연에서는 70㎏ 무게의 무쇠 가마솥 16개로 콩을 삶고 11월 콩 수확기에 메주부터 빚는다. 콩을 세척할 때는 최신 설비를 쓰지만, 콩을 삶을 때는 참나무 장작을 땔감으로 쓰는 식이다.


“된장 제조 과정은 오랜 경험을 가진 마을 주민 5명이 담당합니다. 2시간 정도 삶고, 6시간 뜸 들여 메주를 만들면 유기농 재배에서 나온 볏짚으로 이를 엮어 50일가량 발효시켜요. 천일염을 녹인 소금물로 6개월 이상 숙성하는데 이 과정에서 3월 말까지 마을 주민들이 함께 일합니다.”


죽장연에는 장독 3000여 개가 있다. 2010년 이후 제조한 된장이 연도별로 늘어서 있다. 개인의 이름이 쓰여 있는 독도 눈에 띄었다. 장독 한 개를 구매하면 이곳에서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마다 장독 주인에게 장을 퍼서 보내준다. 100㎏ 장독 한 개의 가격은 220만원. 외식업을 하는 사람부터 프리미엄 된장을 찾는 개인까지 다양하다.




죽장연의 된장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통한다. 약 30억원의 연매출 중 10억원가량은 수출에서 나온다. 미국 뉴욕의 미쉐린 레스토랑 ‘단지’와 일본 도쿄 ‘사이카보’, 홍콩 ‘명가’ 등에서 죽장연 제품을 쓴다. 2012년 뉴욕 미쉐린가이드 1스타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린 한국인 최초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오너셰프 후니 킴이 오랜 단골이다. 강민구 셰프의 ‘밍글스’와 ‘솜씨’ 등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도 죽장연 된장을 즐겨 찾는다. 현대와 신세계백화점 등 백화점 프리미엄 식품 코너와 코스트코, 이마트 등에도 납품한다.

죽장연이 1년간 사용하는 콩은 연간 약 30t. 수요처는 늘고 있지만 생산량보다 차별화한 맛을 구현해 품질을 높이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 죽장연은 지하 저장고에서 연도별 된장을 비율을 달리해 블렌딩한 뒤 완성품으로 내놓는 연구개발(R&D)을 하고 있다. 포항=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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