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안 보고 계약했는데 복비 500만원 내라니 말이 되나요"

입력 2020-10-11 09:42   수정 2020-10-11 16:14


지난 8월 마포에 있는 아파트 전세계약을 하고 이사를 준비하고 있는 김모씨(43세)는 비용 계산을 하면서 마음에 불편한 부분이 있다. 이사비용 보다 높은 부동산 중개 수수료다. 6억5000만원에 전세계약을 체결해 상한요율 0.8%를 적용받게 됐다. 최대 중개보수는 520만원이지만, 부동산 중개인은 500만원에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마저도 김씨에게는 부담이다.

그는 "매물도 내가 모바일로 알아봤고 전세 매물도 없어서 들어가 살 집을 보지도 못하고 계약했다"며 "아무리 법적으로 보호를 해준다지만, 4~5명이 달라붙어서 하루종일 일하는 이사업체에 주는 비용 보다 복비(중개수수료)가 더 비싼게 말이 되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신혼집을 구하고 있는 이모씨(34세)는 공인중개사들 때문에 헛걸음은 물론이고 자존심까지 상했다. 예비 신부와의 직장위치 때문에 서울 지하철 5호선이 다니는 지역에 자금 사정에 맞춰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전세대출까지 포함하면 3억~3억5000만원가량을 동원할 수 있었다. 뉴스에서 듣던대로 전셋값은 너무 높고 전세매물은 없었다. 이러한 막막한 현실을 느끼면서 동시에 공인중개사들의 말들까지 보태 상처를 입었다.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셋값 폭등...세입자들 중개사에 불만
이 씨는 처음에는 '우리가 워낙 모르니까 그런가 보다' 했지만 이제는 집 알아보는 걸 포기하고 싶을 정도다. 방문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는 "그 정도 자금으로는 서울에서 전셋집을 어떻게 알아보려고 하나", "아파트 월세를 내거나 빌라 알아보셔야죠"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급기야 "정말 매물없어요. 내가 이거 중개해봤다 얼마 번다고 젊은 분들한테 거짓말 하겠어요", "집값 오르고 거래 안되는 게 누구 때문이겠냐" 등이었다. 이 씨는 "우리는 자금 사정에 맞게 집을 구하러 갔는데, 바보 취급에 거지 취급까지 당하는 심정이었다"며 "어떤 공인중개사분은 집을 구해줄 생각도 없는지 나를 붙들고 정치 얘기를 하는데 정말 피곤했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집값에 이어 전셋값까지 오르면서 중개 시장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전세매물이 워낙 귀한데다 매물까지 없다보니 세입자들은 제대로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집을 계약하고 있다. 중개를 해주는 공인개사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매물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을 보여주기 어려워져서다. 임대차법이 시행되면서 세입자와 집주인간의 분쟁을 중개하는 것도 일이 됐다. 세입자들은 버티기에 들어갔고, 집주인은 집을 빼기 위해 각종 수단을 동원하는데 공인중개사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

현재 서울의 부동산 중개보수 요율은 주택 매매거래가 금액에 따라 0.4~0.9%, 임대차 계약은 0.3~0.8%가 수수료로 책정된다. 매매거래에서 9억원 이상 주택 거래에 최고요율인 0.9%가 적용된다. 10억원 아파트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최고요율을 적용하면 900만원까지 적용받고, 매수인과 매도인 양쪽에서 받는 중개보수가 1800만원에 달한다. 임대차 계약의 최고구간은 6억원 이상은 0.8%가 적용된다. 김 씨처럼 6억원이 넘는 전세계약을 체결하면 중개보수가 500만원을 훌쩍 넘는다.

김 씨는 "공인중개사들이 거래사고에 대비해서 가입했다는 공제는 1억원이고, 그나마도 1년동안 보상해 줄 수 있는 배상금 아니냐"고 되물었다. 임대차법 중 계약갱신청구원으로 사실상 4년 전세가 가능해졌다. 과거 2년 전세라면 공인중개사들의 이러한 보장도 안심의 요소가 됐지만, 더 이상은 아니라는 얘기다.
공인중개사 "생존권 위협"…정부 "수수료율 조정, 시스템 구축"

공인중개사들도 할말은 있다. 집값이 오르는 바람에 수수료가 올랐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중개보수 요율은 2014년 11월 개선된 내용이다. 주택 매매의 경우 6억~9억원 구간을 신설했다 .이전 요율 체계로는 6억원 이상인 주택이 '고가주택'으로 중개보수 요율이 최대 0.9%가 적용되고 있었다. 2014년 이후 9억원 이상은 고가주택으로 분류돼 최고 요율(0.9%)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2000년 1월 '부동산 중개수수료 및 한도 등에 관한 조례 준칙'으로 중개보수 한도가 변경된 후 14년여 만이었다.

하지만 10년도 되지 않아 집값이 오르면서 9억원 이상의 주택을 고가주택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전세 또한 6억원이 고가 전세에서 평균값에 가까운 수준이 됐다. 월간 KB주택가격동향 자료에 따르면 9월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0억312만원으로 처음으로 10억원을 넘어섰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5억1707만원이었다. 2년 전과 비교하면 12.6%(5769만원) 올랐다.

이마저도 외국에 비하면 낮다는 게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의 입장이다. 협회측은 국내 중개수수료 요율(0.3~0.9%)이 다른 선진국 대비 낮은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협회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의 중개 요율은 매매 금액 기준 △독일 3.33% △일본 3~5% △미국 4~6% △캐나다 2~5% △중국 2.5~2.8% △호주 5% 등이다.

더 문제는 중개를 할 물건이 없다는 점이다. 매매거래가 줄어든 건 물론이고 전세거래는 씨가 말랐다.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정책과 시장상황에 따라 일감이 늘고 줄기를 반복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집계가 마무리된 서울 지역 8월 아파트 거래량은 5697건(10월5일 기준)을 기록했다. 전월(1만654건)보다 53.5% 급감해 반 토막이 났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 6월 1만5589건이었지만 이후 급격히 줄고 있다. 집계중인 9월 거래량도 8월의 절반에 못 미치는 1894건에 불과한 상태다.

여기에 정부가 제도적인 개선과 함께 공인중개사 없는 거래를 추진한다고 하자 불안감은 더 커졌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8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부동산 중개수수료 체계를 변경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김 장관은 "부동산 중개 수수료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았다"며 "저희도 고민을 같이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중개 수수료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았다"고 했다.

오는 21일 청원마감을 앞두고 있는 '중개사 없이 부동산 거래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님 전상서'에는 11일 현재 13만명이 넘는 인원이 동의를 했다. 부동산과 관련된 청원이 10만명을 웃도는 건 이례적이다. 청원자는 "전체 거래량의 약 60%만 공인중개사들이 거래하고 있고 나머지는 당사자간 직접거래나 무등록업자들의 불법거래 또는 컨설팅 거래"라며 "무등록업자를 소탕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은 하지않고 모든 책임을 선량한 공인중개사에게 전가하고 사회악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무소를 열고 생업에 종사중인 11만명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도 밝혔다.

온라인 뿐만 아니다. 공인중개사들은 직접 거리에서도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나선 상태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와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중개인 없는 부동산 거래시스템'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릴레이 집회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내년도 예산안에서 ’중개인 없는 부동산 거래 등 19개 분야 블록체인 활용 실증'에 예산 133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힌 게 도화선이 됐다. ‘중개인 없는’이란 문구에 협회를 비롯한 업계 종사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제 2의 타다' 사태...신기술 도입, 이용자들 외면 '닮은 꼴'
이를 두고 '제 2의 타다 사태'라고 보는 시선이 많다. 기술 도입을 두고 정부와 협회 간 갈등이라는 점과 이용자들은 기존의 시장 참여자(택시 운전기사, 공인중개사)의 입장 보다는 새로운 시스템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동안 불합리한 계약이나 과도한 수수료, 일방적인 집주인 편들기 등을 겪어본 입장에서는 공인중개사 입장을 100% 지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앞서의 세입자들처럼 느끼는 소외감은 더하다. 공인중개사들에게 집주인은 세입자가 변경될 때마다 꼬박꼬박 수수료를 받는 곳이다. 그러나 세입자는 지역 내에서 이사할 집을 찾지 않는 이상, 한 번 지나가는 손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과 같이 전세매물까지 부족한 상황에서는 세입자의 입장을 헤아려주는 중개사는 드물다는 게 김 씨와 같은 입장의 목소리다.

부동산 카페나 커뮤니티에는 '직거래를 원한다'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과거에는 원룸이나 소형 오피스텔 등과 같이 소형주택들의 직거래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아파트 직거래와 관련되 글들도 제법 올라오고 있다. 지난해 입주 아파트의 세입자를 직거래로 들인 김모씨는 직거래 예찬론자다. 그는 "분양받은 아파트에서 확인할 내용은 정해져 있고 중개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었다"며 "해외에는 주택형태도 다양하고 주(州)별로 법규도 천차만별이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 아파트고 등기만 떼보면 대부분의 내용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갈등과 반목 속에 지역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는 공인중개사들은 씁쓸한 마음이다. 10년 넘게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에서 A공인중개사를 운영하고 있는 최모씨는 "계약갱신청구권 때문에 하루에 받는 전화만 십여통이다"라며 "계약은 나오지 않지만, 지역 주민들의 무료상담과 중재를 맡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공인중개사에 대해 여러가지 인식이 있지만, 시장의 흐름에 따라 수익이 들쑥날쑥하고 사무실에서 마냥 손님을 기다려야 하는 건 일반 자영업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연남동의 B공인중개사는 "학생들 하숙집부터 게스트하우스 리모델링, 재개발 등까지 지역주민들은 들고 나가도 수십년간 한 자리를 지키면서 주거편의를 위해 나름 노력했다"며 "멀리 있는 집주인을 위해 계단청소나 건물 수리 등도 대신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중개사들이나 중개사처럼 소개하는 직원들이 분양권 장사나 갭투자하는 걸 알고 있다"며 "이를 크게 부풀려서 전국의 중개사들을 잡는 대책을 내놓는다는 건 심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전문가는 "타다 사태는 사기업이 새로운 플랫폼을 내놓으면서 갈등이 시작됐는데, 이번 사태는 정부가 나서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촉발된 게 아니냐"며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정부가 가로채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일부에서는 있다"고 귀띔했다. 또 "유주택자-무주택자, 집주인-세입자에 이어 거래자-중개사 간의 갈등까지 번질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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