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시총 1위' 엑슨모빌, 업계 1위마저 뺏겨…무슨 일?

입력 2020-10-08 16:23   수정 2021-01-06 00:00



엑슨모빌이 시가총액 기준 미국 최대 에너지기업 자리를 라이벌 셰브런에 뺏겼다. 엑슨모빌은 10여년 전만해도 세계 시총 1위 기업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친환경 에너지 트렌드 등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탓에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기준 셰브런은 시총 1420억달러(약 164조원)를 기록했다. 엑슨모빌의 시총은 1416억달러(약 163조원) 수준이다. 이날 셰브런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2.05% 올라 주당 73.78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엑슨모빌 주가는 33.50달러로 전날 대비 0.33% 상승에 그쳤다.
위기 대응 속도가 희비 갈라
엑슨모빌과 셰브런은 모두 1879년 출범한 스탠더드오일이 전신이다. 같은 에너지업계에 있지만 올들어서는 양사간 희비가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위기시 의사결정 속도 △중장기 기업전략 △평소 재무관리 등이 서로 딴판이어서다.

두 기업은 올들어 외부 충격으로 석유시장이 고꾸라지자 각각 다르게 대응했다. 지난 5월 국제 유가는 배럴당 30달러선을 횡보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간 ‘유가 전쟁’이 겹친 영향이다.

지난 5월 말 셰브런은 에너지 대기업 중 가장 발 빠르게 상당한 예산 삭감을 단행했다. 생산활동 변동에 맞춰 직원 10~15%를 감원한다는 조직개편안도 내놨다.

반면 엑슨모빌은 반응이 늦었다. 지난 5월 예산을 일부 줄였지만, 지난 7월까지만해도 신규 생산투자를 취소하는 것이 아니고 잠깐 보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셰브런에 이어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등 타 기업이 조직개편안을 내놓을 때도 엑슨모빌은 조직 구성은 손대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지난달이 되서야 현금흐름 악화를 더 버티지 못하고 감원에 돌입했다.
중장기 전략도 차이…'엑슨모빌만 역주행'
중장기 기업 전략에서도 차이가 났다. 최근 에너지업계 주요 트렌드인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두고서다.

지난 5일 블룸버그통신은 자체 입수한 엑슨모빌 내부 문서를 인용해 올초 엑슨모빌이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5년까지 크게 늘릴 계획이었다고 보도했다. 작년부터 주요 에너지기업이 각국 정부와 투자자들을 의식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과는 딴판이다.

셰브런과 로열더치셸, BP 등은 최근 친환경 대체 에너지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에너지 트렌드 변화를 대비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 위해서다. 셰브런은 태양열·태양광, 원자력 등에 투자하고 있다. 로열더치셸은 풍력·태양광·수소 등 비중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기존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석유·천연가스 사업 비중을 60%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엑슨모빌은 앞서도 업계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헛발질’을 한 전례가 있다. 2010년대 미국 에너지업계에서 ‘셰일에너지 붐’이 본격화된 당시 엑슨모빌은 전통 시추법을 통한 석유 생산을 고집했다. 당시에도 각 기업이 석유 대체 에너지 투자를 물색했지만 엑슨모빌은 기존 사업 확장에 열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차이가 엑슨모빌의 시가총액 하락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서서히 저물고 있다고 평가받는 석유에너지 사업에만 몰두하는 엑슨모빌보다 신사업에 발을 넓히는 다른 기업이 더 매력적이라는 얘기다.

녹색금융 전문기업 제너레이션의 지가르 샤 공동창업자는 "요즘 투자자들은 재생에너지는 성장하고, 석유와 가스 사업은 쇠퇴할 이야기만 남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셰브런은 ‘저비용 고효율’…“빅 오일 중 재무상황 가장 탄탄”
엑슨모빌이 그간 공격적으로 늘린 석유 생산 투자도 독이 됐다. 엑슨모빌은 미국을 비롯해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각지에서 개발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대규모 초기투자가 이미 시작된 탓에 중간에 발을 빼기도 어려워졌다. 10년 전 ‘제로’였던 부채는 500억달러로 불어났다. 영업 활동에 필요한 현금 부족분은 내년까지 48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싱크탱크 카본트래커의 앤드루 그랜트 석유·가스·광업부문장은 “엑슨모빌은 화석연료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 것이라고 확신하고, 이때문에 지난 10년간 관련 자산 매입과 투자를 반복하다 수익이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반면 셰브런은 ‘저비용 고효율’ 전략을 쓰고 있다. 작년까지 에너지업계에서 여러 인수합병(M&A)이 일어났지만 과열 투자를 자제했다.

셰브런은 이를 통해 아낀 돈으로 코로나19 충격을 견뎠다. 지난 7월엔 텍사스 기반 석유기업 노블에너지를 50억달러에 인수해 세계 곳곳에서 신규 유전 사업을 확보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셰브런은 ‘빅 오일’ 기업 중 가장 재무가 탄탄한 기업으로 부상했다”며 “이를 기반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싼 값에 자산을 사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셰브런 주가는 ‘코로나19 저점’ 이후 36% 상승했다. 반면 엑슨모빌은 6.5% 회복에 그쳤다. 이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셰브런의 시가총액 우위는 더 공고해질 가능성이 크다.

엑슨모빌이 지난 9월부터 다우지수에서 퇴출된 것도 시총 격차를 벌릴 전망이다. 기업이 지수 구성 종목에서 제외되면 지수 추종펀드의 패시브 자금도 빠지기 때문이다. 셰브런은 다우지수에 포함돼 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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