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간송미술관의 재정난이 가장 큰 이유였다. 여기에 전 선생의 장남 전성우 전 이사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유가족에게 거액의 상속세가 부과된 점도 한몫했다. 미술관이 보유한 상속세 대상 유물만 4000여 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금을 내기 어려울 때 현물로 대신 내는 제도를 ‘물납제도’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상속·증여세가 2000만원 이상이거나 상속·증여 재산의 절반 이상이 부동산 또는 유가증권일 때 물납이 가능하다. 물납 대상은 부동산과 국채, 주식 등 유가증권으로 한정한다.
한국에서는 미술품 물납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상속 과정에서 미술품 매각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간송미술관이 대표적 사례다. 결국 간송미술관의 국가지정보물 두 점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8월 매입했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의 문화재 구입 예산은 연간 50억원에 불과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1973년 파블로 피카소가 세상을 떠났을 때 프랑스 정부는 후손으로부터 상속세 대신 피카소의 작품을 받았다. 프랑스 정부는 이후 파리에 피카소박물관을 열고 물납받은 작품을 공개했다. 영국과 일본도 상속세의 경우 미술품으로 대신 낼 수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지난 7일 연구보고서에서 미술품 물납에 대해 “재정적으로 국가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국민이 얻게 되는 사회적·문화적 공공 가치가 미술품 매각으로 얻게 되는 경제적 가치보다 더 높다”고 밝혔다.
미술품 물납을 허용하면 감정평가액에 대한 공정성 시비 논란도 있을 수 있다. 일본은 문화청이 외부 전문가 자문을 거쳐 해당 작품의 가격을 평가한 뒤 국세청에 제출한다. 프랑스와 영국은 각각 평가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 의원은 “예술품을 객관적으로 감정평가할 수 있는 기구가 설치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각에서는 조세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나 현금 납부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다. 입법조사처는 “연간 4000만파운드(약 618억원) 한도 내에서 미술품 상속세 물납을 허용하는 영국 사례를 참조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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