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교황청과 노벨재단의 재테크

입력 2020-10-11 18:21   수정 2020-10-12 00:29

유럽에선 중세까지만 해도 대금업이 교회법상 불법이었다. 로마 교황청이 비(非)기독교인인 유대인만 예외로 두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원천 금지시켰다. 역사의 필연이겠지만, 대금업이 제대로 된 은행업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도 이런 교황청 규제 완화였다. 십자군 원정 이후 동방무역이 활발해지자 교황청이 환어음까지 발행하는 환전상의 대출 기능을 눈감아주면서 14세기 은행업이 본격 태동했다. 피렌체의 메디치가(家)도 이때부터 자본력을 키울 수 있었다.

금융의 역사는 이처럼 교황청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자체 자금을 운용하는 교황청의 재테크 역사도 1000년을 넘었다. 철저히 베일에 가려 있지만, 교황청 재정을 맡은 바티칸은행의 보유자산만 23조~24조원에 이른다는 추정도 있다. 적어도 교황청이 ‘숨은 투자고수’일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교황청은 2006년 제약회사 화이자가 분리 매각하는 바이오벤처를 인수키로 해 화제를 모았고, 2011년에는 바티칸은행의 돈세탁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최근 교황청이 고위험 파생상품에까지 손댔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해 다시 주목을 끌었다. 기부금으로 조성된 5억2800만유로(약 7200억원) 가운데 일부를 경영난을 겪는 미국 렌터카업체 허츠의 신용부도스와프(CDS)에 투자했다는 것이다. CDS는 국가, 기업 등의 부도위험만 따로 떼내 거래하는 고위험 전문 투자상품이어서 더 놀랍다.

마침 노벨상 발표 시즌을 맞아 또 다른 ‘투자고수’로 스웨덴 노벨재단이 조명됐다. 상이 제정된 1895년 3100만크로나(약 40억원)로 시작해 작년 말 49억200만크로나(약 6368억원)로 자산을 불렸다. 매년 이자 수입의 67.5%를 노벨상 5개 부문 상금(각 100만크로나)으로 주고도 119년간 재산을 불린 것이다.

노벨재단과 교황청의 자금 운용방식은 대외 이미지와 달리 ‘공격적 투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노벨재단은 초기 정부보증채 등 안전 채권 위주에서 주식·부동산 등 위험 투자로 비중을 넓혀왔다. 미국 대학 기금들도 주식은 물론 벤처캐피털, 헤지펀드 등 다양한 고수익 포트폴리오를 가동 중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저금리가 기약 없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수익률 하락을 막으려면 결국 투자전략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교황청 등의 투자에도 이런 고심의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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