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자주권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세력을 선제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전쟁억제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견제 대상인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우리 정부를 향해선 “손을 마주잡는 날이 찾아오길 기원한다”며 유화 메시지를 던졌다.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면서 핵을 포함한 군사력 증강을 멈추지 않겠다는 위협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은의 대남 메시지와 관련해 일각에선 향후 남북한 관계 개선의 실마리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반대급부를 얻기 위한 북한의 냉·온탕식 강온 양면 전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김정은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의 전쟁억제력이 결코 남용되지는 않겠지만, 그 어떤 세력이든 우리를 겨냥해 군사력을 사용하려 든다면 가장 강력한 공격적인 힘을 총동원해 응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군사력이 그 누구를 겨냥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우리 스스로를 지키고자 전쟁억제력을 키우는 것뿐”이라고 했다.
대북 제재 장기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수해로 인한 ‘삼중고’를 겪고 있는 한 해를 짚으며 “연초부터 하루하루 한 걸음 예상치 않았던 엄청난 도전과 장애로 참으로 힘겨웠다”고 했다. 연설 중간에 울먹이기도 하며 주민들을 향해 “미안하다” “고맙다” 등의 표현을 10여 차례 사용했다.
이날 공개된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4A’도 다탄두 미사일로 분석된다. 작년 7월 시험발사한 기존 ‘북극성-3형’(사거리 450㎞)과 비교해 직경이 확장된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이 개발 중인 4000t급 이상의 대형 잠수함에 실어 미 본토에 접근할 경우 서부 도시 공격이 가능하다. 열병식을 지켜본 미·일 군사전문가들은 “괴물급” “세계 최대의 이동식 ICBM”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신형 ICBM·SLBM 모두 아직 시험발사 등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완성도와 실전 배치 가능성 등은 언급하기 이르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내달 미 대선 이후 예상되는 미국과의 새로운 외교전에 대비한 상황 관리용 전술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체제 보장을 위한 전술무기 개발과 대북 제재 완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유화 제스처를 동시에 구사하는 책략이란 지적이다. 미국과의 추후 협상에서 필요에 따라 우리 정부를 단순 중재자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얘기다.
신범철 한국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김정은이 우리 정부에 유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는 발언을 내놨지만 남북 관계 냉각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미 대선 이후 비핵화 협상이 자기들 뜻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신형 ICBM 시험발사 등 무력시위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