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리가 찾고 있는 리더

입력 2020-10-13 17:27   수정 2020-10-19 16:17

조각을 예술로 승화시킨 근대조각의 시조 오귀스트 로댕을 말하면 대부분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칼레의 시민’이 먼저 떠오른다. 사실 작품 자체가 웅장하거나 아름다운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눈빛 하나, 얼굴 주름 하나에도 세상 고뇌를 다 짊어진 듯한 여섯 명의 보통 사람이 무리 지어 걷는 모습이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어디로 향하고 있었던 걸까.

백년전쟁 당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칼레 지방을 점령하고 이렇게 선언한다. “대표자 여섯 명이 대신 처형당한다면 나머지 시민은 모두 살려주겠다.” 선뜻 나선 사람이 있었을까. 칼레 최고의 재력가였던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가장 먼저 자원했다. 칼레의 시장, 법률가, 부호 등 상류 계층이 뒤를 이었다. 이들은 스스로 목에 동아줄을 옭아맨 채 영국군 진지에 맨발로 걸어 들어갔다. 시민들이 그 뒤를 울며 따랐다. 서기 1347년의 일이다.

리더의 모습으로 역사책 속 7척 장수나 영화에 등장할 법한 영웅을 떠올린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만난 리더들은 그렇게 특별한 사람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가장 평범한 모습을 한 채 공정, 평등, 정의와 같은 우리 사회의 기본적 가치를 몸소 실천하며 품격을 보여준 이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품격이 배어 있는 사람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한 명예가 뒤따른다. 앞선 곳에서 대중을 이끌 수 있는 자격도 주어진다. 리더란 바로 그런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리더 부재의 위기에 빠져 있다. 사회 지도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는커녕 각종 범죄에 연루되고 거짓말과 말 바꾸기로 일관하는 모습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실망도, 국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자성도 한다. 법 너머에 있는 정의의 가치를 수호해야 할 리더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며 미래세대들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에 물질적 생활 수준은 몰라보게 향상됐지만, 정신적 품격의 수준은 과연 어디에 놓여 있는지 의문이다. 국민이 거리로 나가 리더들을 향해 정의와 진실을 목놓아 부르짖는 세상에서 우리는 이제 누구에게 기대야 할까.

‘나훈아 신드롬’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가슴이 뻥 뚫렸노라고 했다. 어느덧 오빠에서 ‘아재’가 된 한 가수의 공연에 이토록 온 국민이 열광하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국민들이 그간 마음 붙일 곳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의 정치는, 우리의 리더들은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는 걸까. 홀연히 나타나 지친 국민을 달래고 사라진 가수 나훈아의 뒷모습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나도 테스형에게 묻고 싶다. “우리의 리더는 어디에 있나요?”

소크라테스를 형이라고 부르는 훈아 아재가 말한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가 생길 수 없다”고. 우리가 찾고 있는 리더는 바로 침묵하고 있는 우리들 자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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