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준공한 VRDS를 설치하는 데 SK에너지가 쓴 돈은 1조원이 넘는다. 친환경 기술이 집약된 설비여서 설치하는 데만 25개월이나 걸렸다. 회사 관계자는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들었지만 꼭 필요한 투자였다”며 “저유황 중유 수요가 늘고 있어 연간 3000억원 정도의 영업이익 증가 효과를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화학산업은 ‘환경오염의 주범’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생산 공정에서 이산화탄소와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해서다. SK이노베이션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위해선 이미지부터 바꿔야 한다고 봤다. 2030년까지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그린밸런스 2030’ 전략을 울산CLX에 가장 먼저 도입한 배경이다.
울산CLX의 핵심 아젠다는 ‘필(必)환경’이다. 유기화합물인 방향족을 부가가치가 큰 벤젠, 자일렌 등으로 전환하기 위한 ATA 공정에서 클레이 흡착설비를 없앤 것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해당 공정을 담당했던 권혁준 SK종합화학 과장은 “흡착설비가 꼭 필요할까”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했다. 흡착설비만 없애도 에너지 비용과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생산 현장과 협업해 수많은 제품 샘플을 분석했다. 공정 시뮬레이션을 반복해 흡착설비를 제거해도 제품 성능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렇게 해서 1996년부터 사용해온 흡착설비를 뜯어낼 수 있었다. 이 결과 연간 4억3000만원에 달하는 에너지 비용을 절감했고, 연 2190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권 과장은 “과거엔 공정 설비를 없앤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며 “ESG를 앞세우다 보니 발상의 전환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SK에너지는 지난 5월 사람 대신 기계 장비로 열교환기를 세척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 결과 1기당 평균 작업시간은 6시간에서 3시간으로 줄었다. 하루 900t 이상 사용되던 세척용수도 400t 이상 줄였다. 이는 1400여 명이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규모다.
종합폐수처리장도 대대적으로 손봤다. 울산CLX는 고사천 옆에 자리잡은 데다 울산만과도 연결돼 있다. 수질 관리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종합폐수처리장은 정유·화학공정을 거치면서 오염된 폐수를 정화해 2급수 수준의 물로 흘려보낸다. 공장을 가로지르는 고사천에 백로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게 된 배경이다.
SK 관계자는 “ESG 경영은 거창한 구호를 앞세우기보단 일상적인 혁신 과정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환경보호뿐 아니라 공정 효율화와 생산성 향상까지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울산=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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