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이후 부도·피인수…벡셀·알이배터리, 토종 명맥잇기 '힘겨운 도전'

입력 2020-10-14 17:24   수정 2020-10-15 02:24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1차전지(건전지) 시장은 토종 브랜드인 로케트전기의 ‘로케트’와 서울통상의 ‘썬파워’가 양분했다. 1946년 창립된 로케트전기는 우수한 제조기술력을 바탕으로 한때 세계 70여 개국에 국산 건전지 제품을 수출했다. 중국 등 건전지 제조 후발국에 제조설비를 수출할 정도로 세계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국내 건전지 시장의 판도가 바뀌었다. 해외 브랜드가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국내 브랜드를 하나둘 사들였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국내 건전지 회사의 내수 점유율은 20% 밑으로 떨어졌다. 남아 있는 일부 국내 업체는 ‘100% 국내 생산 건전지’라는 마케팅을 펼치며 산업의 명맥을 잇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건전지 시장 75% 해외 브랜드에 뺏겨
건전지는 충전해 재사용할 수 있는 2차전지와 달리 한 번 쓰고 버리는 전지다. 가정에서 흔히 쓰이는 리모컨, 시계 등에 넣는 원통형 망간건전지와 알카라인건전지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건전지 시장에서 국내 업체 점유율은 90%를 웃돌았다. 하지만 해외 유명 브랜드인 ‘에너자이저’와 ‘듀라셀’이 1996년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듀라셀 브랜드를 소유한 P&G는 1996년 서울통상의 썬파워 브랜드를 인수했다. 이어 1998년 로케트 브랜드를 800억원에 사들였다. 이후 로케트전기는 P&G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만 건전지를 공급하는 하청업체 역할을 하게 됐다. 이 시기 에너자이저는 TV 광고 속 백만돌이 캐릭터를 내세워 빠르게 내수 점유율을 높여갔다.

국내 업체들은 1997년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생사기로에 놓인 때였다. 로케트전기 출신인 차인범 알이배터리 대표는 “폐업 위기에 놓인 기업은 임시방편으로 브랜드를 매각해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던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서울통상은 1999년 자체 브랜드인 ‘벡셀’을 출시하며 재기에 나섰지만 해외 브랜드와의 경쟁에 밀려 2003년 끝내 부도를 맞았다. 로케트전기 역시 2차전지 등 신규 사업을 시도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했으나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2016년 폐업했다. 업계에선 국내 건전지 시장 규모를 약 170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중 에너자이저, 듀라셀 등 해외 브랜드가 75%를 장악하는 시장으로 굳어졌다.
“옛 로케트 명성 잇는다”
해외 브랜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국내 건전지 무역수지는 2005년부터 15년째 적자를 거듭하고 있다.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전지(망간·알카라인건전지) 무역수지 적자는 7310만2000달러(약 837억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건전지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소매점에 유통되는 건전지 중 70% 이상은 중국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국산 건전지의 명맥은 벡셀과 알이배터리가 잇고 있다. 부도 난 벡셀은 2005년 삼라마이더스(SM)그룹에 인수됐다. 현재 중국에서 OEM 방식으로 수입한 건전지와 경북 구미공장에서 생산한 국산 제품을 국내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전지 제조 기술력을 바탕으로 2차전지, 특수전지, 가전, 이모빌리티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알이배터리는 2015년 로케트전기 출신 임직원이 세운 회사다. 로케트전기 광주공장을 사들여 ‘쎈돌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출시했다. 하지만 브랜드 인지도가 부족한 탓에 시장 안착에 실패하며 폐업 위기에 몰렸다.

생활용품기업 크린?은 올초 이 회사를 인수해 지난 8월 ‘하이퍼맥스’라는 건전지 브랜드를 선보였다. 크린? 관계자는 “옛 로케트전기가 70년간 쌓은 제조 기술력과 100% 국내 생산이 주는 신뢰를 바탕으로 외국산 중심의 국내 건전지 시장을 재편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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