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쇼핑과 신세계그룹, 누가 먼저 '조직 난맥'을 풀까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2020-10-16 08:59   수정 2020-10-16 09:45


롯데쇼핑과 신세계는 유통업계의 양대 산맥이다. 둘은 늘 경쟁하며 차별화를 꾀한다. 다름을 추구하면서 결국은 닮는다. ‘1등 의식’이 그랬다. 두 그룹은 한국의 리테일 산업을 양분(兩分)했다고 자부하며, 안분지족을 구가했다. 깨질 것 같지 않았던 양분 구도는 쿠팡, 네이버쇼핑 같은 기존의 공식을 깨버린 ‘파괴자’의 등장으로 여지없이 무너졌다. 쿠팡은 저가와 빠른 배송을 무기로 소비자 지상주의를 내세우며 ‘엔드 유저(end user)’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네이버 쇼핑은 소상공인 우선주의로 수백만명의 판매상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기존 구도를 깨는 파괴적 상황을 가속화, 현실화했다.

신세계와 롯데가 서로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경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대미문의 상황을 맞아 둘은 닮아갈 수 밖에 없다. 전열을 새로 가다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16년 6월 검찰의 압수수색에서부터 시작된 약 4년 간의 사법 리스크에서 해방됐다. 경영권 분쟁을 마무리지으며 올 4월엔 명실공히 한·일 롯데를 총괄하는 회장에 올랐다. 신세계도 지난달 이명희 회장이 이마트 부문을 총괄하는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백화점 총괄사장에게 각각 지분 8.2%씩을 넘기면서 사실상 경영권을 승계했다.

신세계그룹이 이마트 부문의 연말 정기 인사를 15일 단행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용진 부회장은 ‘위드(with) 코로나19’ 시대를 헤쳐나갈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에 내년을 맞이해야 한다. 밀물이 들어올 때는 어떤 배를 띄우 건 배가 뜨지만, 썰물 때엔 성능 좋은 배를 빨리 띄워야 항해를 시작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마트의 ‘가을 인사’는 연말을 어영부영 보내지 말고 하루 빨리 내년 대응 계획을 세우라는 엄명이다. 롯데도 신동빈 회장이 이달 중 귀국하는대로 연말 인사를 앞당겨 단행할 전망이다.

롯데와 신세계 인사의 관전 포인트는 조직 난맥상을 어떻게 풀 것이냐다. 신 회장과 정 부회장은 코로나19 이전이었던 지난해 정반대의 인사 실험을 단행했다. 신세계는 ‘따로 또 같이’ 전략을 택했다. 작년 3월 그룹 온라인몰을 한 데 묶어 SSG닷컴을 분사한 게 대표적이다. 온라인 전문 조직을 오프라인에 특화된 기업의 사업부로 남겨두면 혁신의 싹이 자라기도 전에 잘려버린다는 판단에서였다. 외부 인사들을 과감히 고용한 것도 정 부회장의 ‘히든 카드’다. 작년 10월 이마트 수장에 오른 강희석 대표가 대표적이다. 그는 서울대 법대, 농림수산식품부 관료, 베인앤컴퍼니코리아를 거친 인물이다. 반면, 신 회장은 통합 방식을 택했다. 85개에 달하는 계열사를 4개 BU(사업 부문)로 묶어 통합 시너지를 내는데 주력했다. 리테일 사업 역시 강희태 롯데쇼핑 BU장(부회장)이 온·오프라인의 모든 유통 채널을 총괄하는 형태다. 지난 8월 롯데그룹의 ‘2인자’로 불리던 황각규 부회장이 용퇴한 뒤 이어진 지주 인사에선 신 회장의 전략이 잘 드러난다. 백화점 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이동우 사장을 황 부회장 후임으로 앉히는 등 여전히 ‘롯데 공채’를 우선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롯데와 신세계가 ‘디지털 쇼핑 공룡’들과 대적하기 위해 각기 다른 전략을 내놓긴 했지만, 최근 1년 여의 성적은 두 기업 모두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놨다고 보기는 어렵다. 신세계그룹은 이마트, SSG닷컴, 백화점 등 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유통 채널들이 따로따로 움직이고 있다는 단점이 드러났다. 예컨데 SSG닷컴에서 수박을 검색하면 거의 10가지 수박이 노출된다. 소비자들은 어떤 수박을 고를 지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신세계처럼 유통 관록이 있는 기업의 장점은 신뢰다. 바이어가 엄선한 신선한 상품을 자신있게 내놓고, 소비자는 이를 믿고 산다는 게 오프라인 유통 강자들이 1등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던 비결이다. 그런데 SSG닷컴에선 이런 공식에 균열이 나타났다. 게다가 백화점 바이어가 소싱한 수박은 제대로 노출조차 되지 않는다. 각 채널별로 바이어가 달라 저마다의 방식으로 상품을 조달하고 있다는 게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별도 법인이다보니 계열사의 CEO와 실무 책임자들은 저마다의 성과평가에 목을 멜 수 밖에 없다는 점도 ‘따로 또 같이’ 전략의 한계다. 실적도 신통치 않은 편이다. 이마트가 9월 총매출이 전년 대비 15% 가량 증가하는 등 예상을 깬 실적을 기록했지만, 상반기엔 역대 최악의 실적을 낸 바 있다. SSG닷컴도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9월에 내부 관리 이익이 흑자로 돌아서긴 했다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부 지표일 뿐이다.

롯데쇼핑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롯데쇼핑의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과 비교해 98% 급감했다. 신동빈 회장이 “아침부터 잠 들 때까지 고객들이 찾아오는 쇼핑 플랫폼으로 만들라”고 했다는 롯데온은 아직 ‘위너(winner)’의 대열에 끼기엔 한참 모자라다. 대형마트, 백화점, 할인점 등 기존의 유통 채널들이 갖고 있던 상품 코드를 통일하는데 거의 1년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1만개도 안되는 품목을 ‘전산화’하는데도 애를 먹고 있다는 얘기다. 쿠팡의 취급 품목이 억(億) 단위라는 점을 감안하면 롯데온은 신생아 수준인 셈이다. 롯데그룹이 금융 빼고 거의 모든 리테일과 관련한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히고는 있지만, 이들 계열사들의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결합하며, 이를 롯데온이라는 플랫폼 위에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 지는 아직 누구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강희태 부회장이 쇼핑 내 여러 채널들의 통합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느냐는 질문에 관해선 여전히 물음표가 붙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세계와 롯데가 가야할 방향은 정해져 있다. 온라인, 오프라인, 모바일을 넘나드는 옴니 채널을 구현하는 것이다. 쇼핑에 관한 한 수백만, 수천만명의 소비자들이 롯데 혹은 신세계라는 플랫폼 위에서 즐기고, 구매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의 목표다. 관건은 이를 어떻게 ‘조직적’으로 풀어나가느냐다. 쿠팡이나 네이버쇼핑처럼 맨땅 위에 건물을 짓는 기업은 너무나 쉬운 일을 롯데와 신세계는 매우 어렵게 해야한다는 게 가장 큰 장애물이다.

15일 임원인사에서 정 부회장은 강희석 이마트 대표에게 SSG닷컴 겸직을 시킴으로써 나름의 해법을 내놨다. 계열사 대표 인사에선 외부 출신 우대 원칙이 더 굳어지는 모양새다. 손정현 신세계아이앤씨 대표는 SK텔레콤 출신으로 아이앤씨에 상무로 영입됐다가 이번에 승진했다. 신세계푸드의 송현석 대표도 OB맥주에서 마케팅으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다. 신 회장이 귀국 후 롯데 85개 계열사에 대한 임원인사를 어떤 방향으로 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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