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예의, 소통 그리고 신뢰

입력 2020-10-18 18:00   수정 2020-10-19 00:18

지금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분업의 효율성을 설명한 것은 당시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분업은 생산 공정, 직업, 국제교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화 혹은 특화라는 형태로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국부론》 이후 약 250년 만에 현재와 같은 경제 수준을 누리게 된 데는 분업의 역할이 지대했다.

상품, 서비스, 노동력 등도 최소한의 기능을 구현하는 단위인 모듈로 쪼개져 제공되고 사람들은 여러 모듈을 조합해 만족을 얻는다. 기본적으로 분업과 같은 개념이다. 4차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이런 추세는 더 가속화될 것이다. 논의를 사회로 확장한다면 향후 사회가 점점 더 다양한 그룹으로 분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분적으로 최선인 것을 모은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최선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구성의 오류다. 수많은 집단으로 구성된 사회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소통과 신뢰가 필요하다.

내가 속한 집단은 열심히 하는데 다른 집단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불신이 일반화될수록 사회적 갈등은 증폭된다. 갈등은 사회·경제적 발전의 동력을 분산시키고 약화시키는 등 막대한 비용을 야기한다. 어느 사회든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공동체적 연대가 강한 고신뢰 사회의 중요성을 애써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서로 잘 알아야 신뢰도 쌓일 수 있으므로 소통은 신뢰의 전제조건이 된다. 그저 만나서 공허한 이야기만 나누는 것을 소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마음이 통하고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정서적인 만족을 얻는 것이 소통이다. 시인이자 작가였던 마야 안젤루도 “사람들은 상대방이 한 말이나 행동은 잊어도 그때 느꼈던 기분은 절대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소통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으뜸 덕목은 스스로 누구에게나 예의를 다하는 것이 아닐까. 묵자가 말한 ‘겸애(兼愛)’라는 것도 결국 모두에게 공평한 사랑, 다시 말해 모두를 배려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어떤 기준으로 행동해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가장 간단한 기준을 공자의 말씀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 “남이 나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을 나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말로 단순명료하지 않은가.

모두에게 예의를 다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개인으로도 살아남고 사회도 효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첩경이다. 말이야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만만치 않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연히 아는 것은 별로 없다. 지금 정말로 중요한 것은 코딩 등 기술교육이 아니라 기초소양교육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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