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정상가격'은 자의적 기준…형사고발은 재량권 남용"

입력 2020-10-19 17:26   수정 2020-10-20 02:53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들이 임의로 정하는 정상가격은 ‘정부 공시가격’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이런 잣대를 통해 형사 고발하고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물리는 것은 명백한 재량권 남용입니다.”

2018년까지 3년간 공정위 비상임위원을 지낸 왕상한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는 19일 기자와 만나 공정위의 정상가격 산정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전 공정위 위원이 공정위의 판단 준거를 공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는 공정위의 정상가격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며 위헌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올해 4월까지 법무부 발간 학회지에 게재해 관련 학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정상가격은 대기업 집단의 부당지원 및 총수 사익편취 등을 판단하는 공정위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공정위는 이를 ‘비정상적인 판단이 개입되지 않았을 때 책정됐을 정상적인 가격’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얼마나 벗어나느냐에 따라 부당지원 행위 성립 여부와 과징금 규모가 결정된다. 최근 공정위의 부당지원 판정으로 법정에서 다투고 있는 LS그룹, 대림산업, SPC그룹 등도 정상가격 문제가 빌미로 작용했다.

왕 교수는 상품 및 서비스의 발달로 정부가 임의로 정상가격을 설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거래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무한하고, 이들 내용이 경쟁자에게 공개되지 않는 가운데 외부에서 합리적인 정상가격을 산정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 그가 제기한 문제다.

SPC 계열사들이 그룹 내 다른 계열사로부터 밀가루 가격을 비싸게 구입했다는 공정위의 지난 6월 결정이 그런 예다. SPC는 빵 종류에 따라 밀가루 자체를 주문 생산하거나 프랑스에서 수입했지만 공정위는 시중에서 거래되는 강력분 매매가를 근거로 정상가격을 산정해 부당지원으로 판단했다.

정상가격이 존재하더라도 기업들이 지킬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왕 교수는 “기업이 새로운 거래를 할 때마다 경쟁자들이 어떻게 하는지 다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정상가격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처벌하는 쪽에서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범법과 합법이 가려지는 임의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정위 스스로도 “정상가격 판단 기준을 설명해달라”는 한화와 하림 등의 요구를 거부해 행정소송 중이다.

공정위는 하이트진로의 계열사 주식 매각과 관련한 정상가격 산정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수치만 회계법인에 제공한 사실이 밝혀져 법원에서 패소하고 과징금을 되돌려줬다. 삼양식품의 오너 소유 회사 부당지원에 대해서는 엉뚱한 비교 대상을 갖고 정상가격을 산정했다는 법원 판단을 받았다. 부당지원 등과 관련해 최근 5년간 공정위에 제기된 소송 11건 중 공정위가 전부·일부 패소한 건이 9건에 달하는 것도 정상가격 산정 문제 때문이다.

부당지원과 관련한 공정위 처벌은 2013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부당지원 조건이 ‘현저히’에서 ‘상당히’로 기준이 낮아지며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구체적인 기준은 공정위 내부 지침에서 추상적으로 나열되고 있을 뿐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다. 왕 교수는 “공정위가 정말로 시장 바깥에서 합리적인 가격을 산출하는 수단을 갖췄다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아야 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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