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대용신탁에 맡긴 재산이 유류분에 포함될지 여부는 2012년 상품이 출시됐을 때부터 논란이 됐다. 상품 특성상 유류분 계산의 바탕이 되는 적극재산과 증여재산 어느 쪽에도 포함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법(1113·1114조)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유류분은 △상속이 시작될 때 고인이 갖고 있던 재산(적극재산) △시기에 상관없이 생전에 상속인(배우자나 자녀 등)에게 증여된 재산(증여재산) △사망하기 1년 이내에 제3자에게 증여된 재산(증여재산)을 기반으로 계산한다. 단 제3자가 재산을 받음으로써 특정 상속인에게 손해가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이 역시 시기와 상관없이 유류분 산정 대상에 포함된다. 따라서 고인이 사망하기 1년 이전에 제3자에 해당하는 은행에 재산을 맡기고 그 은행이 다른 상속인에게 피해를 주겠다는 식의 악의가 없다면 유류분 적용을 피할 수 있다.
신탁은 유언에 비해 가족 간 상속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언장을 통한 상속 집행은 보통 상속인 중 한 명이 진행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 다른 상속인 간 갈등이 빚어지는 일이 잦다. 반면 신탁은 공신력 있는 제3자, 즉 은행이 고인의 뜻에 따라 미리 정해진 대로 상속을 집행하기 때문에 갈등을 방지할 수 있다.
1인 가구와 비혼, 딩크(자녀 없이 사는 부부)의 가족 형태를 지닌 자산가들에게도 신탁이 활용될 수 있다. 민법 1009조 등은 자녀 또는 배우자에게는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을, 형제자매 등에게는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보장하고 있다. 즉 자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형제자매 등에게 유류분만큼의 자산이 보장되는데, 이때 신탁을 활용하면 고인의 뜻대로 자산을 처분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고인은 둘째 딸에게 자산을 물려주기 위해 2014년 유언대용신탁에 수도권 부동산 세 건과 현금 3억원 등을 맡기고 2017년 사망했다. 피고를 대리한 김상훈 법무법인 가온 변호사는 “법원의 판례는 피상속인의 재산처분 자유를 더욱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 유류분 제도
상속자들이 일정 비율의 유산을 받을 수 있도록 의무화한 제도. 유언만으로 상속이 이뤄지면 특정인에게 유산이 몰려 나머지 가족의 생계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에서 1979년 도입됐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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