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자립 '기적의 처방'…제조 강국들의 '수소 대장정' [오춘호의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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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10-20 18:05   수정 2020-10-21 07:03

에너지 자립 '기적의 처방'…제조 강국들의 '수소 대장정' [오춘호의 인사이트]

독일이 요즘처럼 신산업 전략을 놓고 떠들썩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 주인공은 수소 정책이다. 독일 언론은 연일 수소에 대한 새 소식을 내놓고 있고 주식 시장에선 린데와 에온 등 수소 관련 기업 주가가 강세를 보인다. 다른 기업들도 수소 관련 분야를 찾느라 애쓴다. 독일 일간지 벨트는 “수소산업 발전에 정치와 과학, 기업이 전례가 없을 만큼 모두 발을 맞추고 있다”고 전한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기적의 처방’이라면서 수소를 치켜 올린다. 지난 6월 독일 정부가 ‘국가수소전략’을 내세운 뒤 일어난 변화다. 그동안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서 의견이 맞지 않아 충돌했던 업계와 정부가 한마음이 된 것이다.

독일 정부는 90억유로(약 12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수소산업 발전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독일에서 수소를 생산·저장·운반하고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개발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유럽연합(EU)과 협력해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형성하려 했던 독일이다. 하지만 수소 에너지만큼은 독일 내에서 개발과 생산, 운송, 판매 등 모든 공급망을 갖추겠다고 나섰다.

페터 알트마이어 경제에너지부 장관은 독일 국가전략을 발표하면서 환경적 차원에서 수소의 필요성 등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그는 대신 “수소 분야에서 독일 산업을 강화해 독일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좋은 기회를 확보해야 한다”며 “수소 분야에서 ‘세계 1위’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한다. 이어 “아시아 국가들을 이겨야 한다”고 역설한다. 디지털은 물론 전기차 배터리 등에서도 한국과 일본에 시장을 내줬던 독일과 유럽이다. 화학산업의 자존심, 자동차산업의 자존심이 구겨졌음에 틀림없다. 노대국의 가쁜 숨을 내쉬기만 할 게 아니라 수소 분야에서 에너지 자립은 물론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하는 용기를 국민들에게 심어주려 하고 있다.

일본도 최근 들어 부쩍 수소에 관심을 높이고 있다. 취임 초부터 ‘규제 개혁’을 강조했던 스가 요시히데 신임 총리는 우선적으로 수소 등 재생에너지에 대한 규제를 혁파하려 한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식인회의를 열고 다시 수소 정책을 짜려 하고 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수소 전략을 가장 먼저 수립한 국가가 일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에너지 자립과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수소산업을 육성한 게 벌써 6년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유럽과 한국, 중국도 수소에 주력하고 있지만 일본은 오히려 지연되고 있다고 꼬집는다. 일본 미국 EU가 협력하는 삼각체제로 한국의 수소 발전을 견제한다는 소리도 들리고 있다.

자동차 수출국의 수소 야심
독일과 일본 모두 에너지 의존국이면서 수출로 먹고사는 제조 국가다. 그 가운데 자동차 수출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 산업 수출의 20%를 넘는다. 고용도 10%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 국가의 가장 큰 먹거리다. 화학산업과 소재 기계 에너지산업의 절묘한 조합인 수소전기차 영역에서 세계 패권을 쥐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이들 국가에 묻어난다.

무엇보다 산업의 전후방 효과가 엄청나다. 현재 내연기관 자동차는 부품이 1만 개가 넘는다. 이를 공급하는 제조사들을 모두 먹여 살린다. 자동차 정비 서비스업이나 주유소 중고차 시장 등 관련 산업도 부지기수다. 수소차 역시 내연기관차만큼 엄청난 전후방 효과를 갖고 있다.

당장 수소 생산에 들어가는 화학 기술과 첨단 소재가 있다. 수소 충전소를 구성하는 재료와 부품만 수천 개에 달한다. 이런 전방 효과보다 수소차 산업으로 형성되는 후방 효과는 더욱 크다. 자동차부품연구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수소 승용차가 양산됐을 때 평균 차량 가격을 4000만원으로 가정했을 경우 경제적 효과가 236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상용차는 물론 기차와 선박 무인항공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소 연료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달 에어버스가 수소 비행기를 실험적으로 띄웠으며, 수소 기차는 영국과 독일 아이슬란드 등에서 이미 운영하고 있다.
현대차, 스위스에 트럭 수출
정작 자동차업계는 수소 승용차보다 수소 상용차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1994년부터 26년간 수소 승용차를 개발해 온 다임러는 올해 승용차를 포기하는 대신 트럭 등 수소 상용차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다임러는 스웨덴 볼보와 합작사를 설립해 다임러의 수소연료전지 사업부를 이전했다. 다임러와 볼보의 수소트럭은 올해 말 처음으로 시장에 나올 계획이다. 도요타도 다임러와 때를 같이하면서 상용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도요타의 자회사인 히노자동차는 지난 5일 북미에서의 트럭 개발 로드맵 ‘프로젝트 Z’를 발표했다. 2021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수소연료전지 대형 트럭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이에 앞서 수소 트럭을 스위스에 수출한 바 있다.

수소 연료차에서 상용차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장거리 수송에 전기차가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이 정착되면서다. 배터리를 많이 쌓으면 항속 거리를 늘릴 수 있지만 차량 중량이 증가하고 화물칸도 좁아진다. 수소차는 달리면서 발전할 수 있고 수소 충전에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충전하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수소차 업체들이 동맹을 맺으려 하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도요타는 다른 일본 기업 8곳과 수소 공급망 구축 및 수소 분야 파트너십을 강화하기 위해 일본수소가치사슬 추진협의회(JH2A)를 설립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전자 업체인 도시바와 가와사키중공업, 미쓰이물산, 고베철강 등이 포함됐다. 수소의 이용 확대와 후방 효과를 누리는 전략이다. 도요타는 또 베이징자동차와 티이자동차 등 5개 승용차 업체와 연료전지 시스템을 공동 개발한다고 밝혔다.

현대차도 미주 기업들과 합쳐 서부 연합의 수소동맹(WHSA)을 조직했다. 이 동맹에는 커패시티트럭과 수소 연료전지로 유명한 플러그파워, 수소 저장 및 운송에 뛰어난 프로티엄 컴퍼니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장기적으로 중국 시장에 뛰어든다는 목표다. 중국 정부는 2025년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와 수소차 등 신재생에너지 자동차 비율을 현재 20%에서 25%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민관협력이 중요
연료차의 문제는 수소충전소 설립이 먼저냐 아니면 수소차 보급이 먼저냐 하는 논쟁에 빠지기 쉽다. 독일이 수소차가 보급되지 않았는데도 충전소를 늘린 건 인프라 구축이 먼저라는 독일 정부의 정책이 만든 결과다. 미국은 수소차 보급과 인프라 구축을 동시에 추진하려 하고 있다. 민관 협력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부시 정권 때 우선 정책으로 수소차를 내세웠지만 오바마 정권에선 수소차 지원이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셰일가스가 개발되면서 미국이 에너지 자립을 넘어 에너지 강국으로 발돋움 한 게 주 원인이다.

하지만 내년 1월 1일부터 파리 기후협약이 발효되면 자동차산업이 당장 규제를 받게 된다. 유럽에선 자동차를 판매하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당 95g 이하로 낮춰야 한다. 1g 초과 시 대당 95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내연기관차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된다면 미국이 탈퇴했던 기후협약에도 다시 참여할 것으로 보여 수소차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수소차와 수소 에너지가 중요한 건 국가 에너지 자립 문제와 직결돼 있어서다. 석유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에너지 자립이 이뤄진다면 정치·경제적 위상도 달라지게 된다. 《수소 혁명》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은 20세기를 석유 시대라고 규정짓는다면, 21세기는 결국 수소 시대로 갈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프랑스 주간지 레제코는 수소차에서 한국 현대차가 도요타를 앞서 나갔다고 특필했다. 수소 패권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 한국의 앞날을 좌우한다.
2035년 휘발유차 금지
캘리포니아 '수소차 실험'…전세계 판매 가늠자 될 듯
지난 9월 23일 개빈 뉴섬 미국 캘리포니아주지사는 2035년까지 주 내에서 모든 휘발유 차량 판매를 금지할 것을 규정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내연기관차의 신규 판매를 금지한 명령이었다. 뉴섬 주지사는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나 수소를 동력으로 하는 배출가스 제로 승용차와 픽업트럭을 많이 생산하도록 했다. 이 의무판매제는 2024년부터 도입되며 초기에는 5~9%를 무공해 차량으로 판매하도록 규제한다. 이어 2030년 30~50%, 2045년에 100%라는 목표를 설정했다.

캘리포니아는 트럭도 환경 규제 적용 대상으로 지목해 2024년부터 규제할 것을 시사했다. 의무 판매 대상이 되는 트럭은 3.8t 이상 중대형 상용차다. 이 상용차에 수소차도 포함될 것으로 보여 캘리포니아에서 수소차 판매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달리는 수소 승용차는 8000대로 추정된다. 하지만 트럭 등 상용차는 거의 드물다. 대형 트럭 등은 장거리를 달리는 차가 많아 수소 연료전지 트럭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제도 도입으로 2035년까지 누적 30만 대의 친환경 트럭이 판매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에 앞서 미국 15개 주가 2050년까지 디젤 트럭을 단계적으로 없애겠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오는 11월 3일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파리기후 협약에 가입할 것으로 보여 미국은 또 한 차례 친환경차 바람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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