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택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 의장 "싱가포르·홍콩 제치고…亞 국제중재산업 주도권 잡겠다"

입력 2020-10-21 15:07   수정 2020-10-21 15:09


한국이 국제 중재시장의 변방 국가에서 ‘아시아 중재 허브’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엔 국내 기업끼리 상거래 분쟁이 있는 경우에도 영국 런던이나 싱가포르에 있는 국제 중재기관을 찾아가 갈등을 해결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국내 기업뿐 아니라 미국 중국 베트남 터키 등 다양한 국가의 기업들이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KCAB인터내셔널)를 찾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올해 10월 16일 기준 KCAB인터내셔널에 접수된 국제중재 사건은 전년 동기 대비 9% 늘었다. 그만큼 국제시장에서 한국의 중재산업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는 얘기다.

KCAB인터내셔널을 이끌고 있는 신희택 의장(사법연수원 7기)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20일 인터뷰에서 싱가포르와 홍콩을 제치고 수년 내로 아시아 국제중재산업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신 의장은 국내 중재산업 분야 최고 권위자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국제통상·투자거래 전문 변호사로 활약했으며, 이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국제중재센터 이사장 등을 지냈다.
▷‘K중재’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하시나요.
“현재 우리 기관의 중재인들 면면을 보면 국제상공회의소(ICC)나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SIAC) 측에서 놀랄 정도입니다. 특정 기관에서 명성이 높은 전문가에게 의장중재인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가 흔쾌히 수락하는지 여부가 해당 기관의 위상을 파악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대부분 우리 제안을 수락합니다. KCAB 중재인 풀(pool)에 자신을 넣어달라는 신청도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10월 둘째주 기준 국내 중재 사건은 전년 동기에 비해 13% 감소했지만 국제중재 사건은 9% 늘었습니다.”
▷한국의 강점은 무엇입니까.
“한국은 대륙법 체계를 가진 국가이면서 영미법을 공부한 변호사가 굉장히 많은 나라죠. 영미법과 대륙법계 국가 기업 사이 분쟁도 공정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동안 물적·인적 투자도 많이 해 중재 퀄리티가 높아졌고 ‘아시아의 스위스’를 목표로 중재 중립성도 굉장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K팝, K뷰티 등으로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좋은 평판을 갖고 있는 것도 사건을 유치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지정학적 요소도 중요하지요.
“그렇습니다. 과거엔 한국 기업끼리의 분쟁을 런던이나 싱가포르에서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서울에서도 런던 못지않은 중재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시간과 비용을 대폭 아낄 수 있다는 것이죠. 여전히 SIAC와 홍콩국제중재센터(HKAIC) 등에서 한국 기업이 당사자인 사건 수가 꾸준합니다. 1단계로 그동안 해외로 유출된 국내 기업 관련 사건을 유치하고, 그다음엔 중국·일본·대만 등 대륙법계에 익숙한 아시아권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코로나19가 국제중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코로나19는 오히려 기회가 될 겁니다. 대면으로 하던 심리 절차 등이 현재 화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처음엔 ‘잘 되겠느냐’ 의심도 있었지만 막상 해보니까 효율적이고 집중도 높은 심리가 가능합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국제중재에서 화상 절차가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정보기술(IT) 강국이고, KCAB는 이 같은 화상 심리 등을 잘 진행할 것이란 글로벌 인식이 있습니다. 이 점을 집중 홍보할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분쟁이 실제 중재사건 접수로 이어지는 상황도 대비하고 있습니다.”
▷화상 심리의 단점은 없습니까.
“‘타임존(시차)’ 문제가 있습니다. 가령 의장중재인은 싱가포르에 있고 다른 중재인은 미국에, 일부 카운슬(법률대리인)은 파리에 있다면 공통적으로 허용되는 시간을 찾기 힘들죠. 계속 화면을 봐야 하니까 눈이 피로해지기도 합니다. 이 같은 이유들로 인해 화상 심리를 하면서 전체적인 심리 시간이 대면 심리를 할 때보다 줄어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만큼 효율적인 집중 심리가 이뤄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최근 베트남 관련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작년 말 베트남 하노이에 KCAB 국제중재센터 사무실을 냈습니다. 베트남에 진출해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한국 기업인도 많으니까요. 또 교포 기업인(일명 ‘한상’)들의 중소형 사건은 물론 대기업 단위의 대규모 투자도 많아 관련 사건이 늘 것으로 예상합니다. 베트남 외에도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한상을 공략할 것입니다.”
▷국내 기업들에 조언이 있습니까.
“국제 계약을 할 때는 준거법과 중재지, 중재기관 세 가지를 유리하게 가져와야 합니다. 계약서를 쓰는 과정에서, 가령 준거법을 한국법이 아니라 우리 기업에 불리할 수 있는 영국법으로 설정할 경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국제거래에서 분쟁이 생길 가능성은 50%입니다. 협상력이 있다면 세 가지 모두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설정하고, 그렇지 않다면 세 가지 중 일부라도 사수하는 ‘살라미 전술’을 써야 합니다. 할 수 없이 상대방의 주장에 따라 중재기관을 ICC로 해야 한다면 적어도 중재지는 서울로 가져오는 식으로요.”
▷준거법, 중재지, 중재기관이 중요합니까.
“가령 물건 판매 계약을 맺었는데 상대방이 계약을 불이행한 경우 한국법에선 ‘계약에 따라 물건을 가져가고 돈을 내라’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영국법에선 손해배상만 청구할 수 있습니다. 준거법을 다른 나라 법으로 할 땐 적어도 현지 변호사로부터 검토라도 받아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겪을 수 있으니까요. 중재 판정 자체에 대해 시비가 생길 경우 해당 지역의 법원에 가야 하는데, 중재지가 만약 런던이라면 한국 기업들로선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선 가장 익숙하고 편한 한국법, 서울, KCAB로 하는 게 가장 유리한 선택지가 될 수 있겠죠.”
▷중재의 발전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최근 게임 IT(정보기술) 엔터테인먼트 등 무형의 산업군에서도 분쟁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재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기업 및 산업군의 범위가 무한 확장되고 있는 셈입니다. 특히 아직 관련 판례 등이 축적되지 않은 신산업 분야일수록 업계 전문가에 의한 판단이 중요하므로, 중재가 소송보다 분쟁 해결에 효율적이라고 판단합니다.”
▷8~9년간 한국 중재의 국제화에 힘을 많이 쏟고 있습니다.
“국제중재는 단순한 법률 서비스가 아니라 고급 지식·컨벤션 산업입니다. 해당 국가의 법률 체계 및 사회 인프라, 인재들이 필수일 뿐만 아니라 여러 산업과 기업들이 발전해야 함께 성장합니다. 무엇보다 중재기관이 있는 국가에 대한 국제적인 명성과 신뢰가 중요합니다. 글로벌 중재 무대에서 K중재가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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