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聖이 남긴 불멸의 오페라…"숭고미·인류애 가득한 걸작"

입력 2020-10-21 17:13   수정 2020-10-22 02:46


악성(樂聖) 베토벤은 57년 생애를 통틀어 단 하나의 오페라만 남겼다. 30세 무렵부터 오페라를 쓰려고 했지만 그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을 찾지 못했다. 당시 유행하던 희극 오페라는 그의 진중한 성격과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다. 베토벤이 겨우 찾아낸 작품은 프랑스 극작가 장 니콜라 부이어가 쓴 희곡 ‘레오노르’. 프랑스 혁명 당시 공포 정치 시대에 벌어진 옥중 탈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었다. ‘완벽주의자’ 베토벤은 1805년 초연 이후 1814년 개정본이 나오기까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수없이 고치고 새로 쓰며 집념을 불태웠다. 1판부터 최종본까지 서로 다른 서곡만 네 편을 썼다.

올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그가 남긴 위대한 오페라 ‘피델리오’가 잇달아 무대에 오른다. 국립오페라단은 23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이 작품을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공연한다. 국립오페라단이 피델리오를 공연하는 것은 1992년 이후 28년 만이다. 네이버TV를 통해 온라인 생중계도 병행한다. 미국 샌안토니오 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독일계 지휘자 세바스티안 랑 레싱이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공연에 나선다. 케보크 무라드가 무대를 연출한다. 플로레스탄 역에 테너 국윤종과 한윤석, 레오노레 역에 소프라노 서선영과 고현아가 번갈아 나온다. 국립합창단도 함께 무대에 선다.

23일 개막하는 서울국제음악제(SIMF)는 3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피델리오 주요 아리아를 들려주는 하이라이트 콘서트를 연다. 윤호근 전 국립오페라단장이 지휘를 맡고 소프라노 이명주(레오노레)와 테너 신동원(플로레스탄), ‘바이로이트의 영웅’ 바리톤 사무엘 윤(돈 피자로) 등이 출연한다.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오페라지만 국내에서는 해외만큼 자주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나 모차르트, 베르니와 푸치니 오페라에 비해 대중성이 떨어져서다. 유형종 음악평론가는 “숭고미(美)가 돋보이는 오페라”라며 “유쾌한 재미를 느끼기엔 부족하지만 자유를 향한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플로레스탄을 아내 레오노레가 남장(피델리오)하고 감옥에 들어가 구출하는 이야기다. 언뜻 보면 부부의 사랑을 그렸지만 베토벤은 ‘자유’에 초점을 맞췄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지휘자 레싱은 “피델리오는 베토벤이 얼마나 인간을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오페라로 남녀의 사랑을 넘어 형제애, 나아가 인류애를 표현했다”며 “종결부에서는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게 ‘자유’라는 걸 일깨워준다”고 강조했다. 20여 년 동안 수십 차례 피델리오를 지휘한 레싱은 정치적인 이유로 공연을 올리지 못할 위기에 몰린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2010년 중동 지역 ‘아랍의 봄’ 시위가 한창일 때 투옥된 대학생들의 이름을 가사에 넣어 공연한 적이 있다”며 “테러리스트들이 ‘오페라극장을 날려버리겠다’고 협박했지만 굴하지 않고 무대에 올렸다”고 말했다.

레싱은 “베토벤이 자신의 삶을 작품에 투영했다”고 해석한다. 18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피델리오가 초연될 때 그는 이미 청력을 잃은 상태였다. 이후 개정 과정에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예술로 승화하려고 했다는 설명이다. “대사를 보면 ‘침묵’이 두려운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로 자주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플로레스탄은 ‘신이시여 너무 어둡고 두려운 침묵입니다’라고 말하죠. 귀가 들리지 않는 데서 오는 자신의 공포를 투사한 것입니다. 가사에서 잦은 쉼표 사용도 이를 보여줍니다.”

레치타티보 대신 연극처럼 대사가 나오는 징슈필(18세기 민속 음악극)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웅장한 오라토리오 대합창이 등장하는 등 음악적인 구조도 남다르다. 이는 베토벤을 신봉했던 바그너의 음악극에 영향을 미쳤다. 레싱은 이번 공연에서 관객들이 피날레에 빠져들 수 있도록 세 번째 서곡(레오노레 3번)을 종결부 직전에 들려준다. 그는 “구스타프 말러와 레너드 번스타인 등이 자주 활용한 구성으로 앞선 내용을 반추해 관객들이 종결부 합창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다.

성악가들이 소화하기 쉽지 않은 아리아가 가득하다. 최근 열린 서울국제음악제 기자간담회에서 사무엘 윤은 “베토벤이 오페라를 피델리오 한 편만 작곡한 것은 완벽주의 때문이었을 것”이라며 “성악가에게도 완벽을 요구해 부담이 큰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어 자음과 모음이 까다롭게 얽힌 탓에 대사와 아리아를 소화하기 힘든 오페라”라며 “여태껏 200번 이상 불렀지만 이 작품은 늘 초심으로 돌아가게 한다”고 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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