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 친필' 한은 머릿돌 가보니…와인 따개가 틈새에 [현장+]

입력 2020-10-22 10:55   수정 2020-10-22 10:57


지난 21일 오후 8시경 찾은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 화폐박물관(옛 조선은행 본점) 머릿돌(정초석)은 조명 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친필로 뒤늦게 밝혀져 화제가 된 그 머릿돌이다.

건물 구석 한 모퉁이에 있는 정초석은 주위가 어둑한 8시 무렵에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건물 관계자에게 정확한 위치를 문의하고 나서야 비로소 찾을 수 있었다.

별도 보호막이 없었지만 거리를 둔 울타리 때문인지 정초석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었다. 누가 갖다놓았는지 모를 와인 따개가 정초석 틈새에 놓인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특이사항도 없었다. 한은은 조만간 이 정초석의 철거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문화재청은 이날 이 정초석에 새겨진 '定礎(정초)' 글씨가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것이 맞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서체 관련 전문가 3명으로 구성된 자문단과 함께 현지 조사를 거쳐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정초란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뜻이다.

현지 조사는 '일본 하마마츠시 시립중앙도서관 누리집'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 붓글씨 등 관련 자료를 참고해 진행됐다.

조선은행이 1918년 발간한 영문잡지 '조선과 만주의 경제 개요(Economic Outlines of Chosen and Manchuria)'에서 '이등방문'(이토 히로부미) 이름이 새겨진 당시의 머릿돌 사진도 조사에 활용했다. 이 잡지에는 머릿돌에 대해 '이토 공작 글씨가 새겨진 주춧돌'이라는 설명이 실렸다.



조사 결과 문화재청은 이토 히로부미의 묵먹(먹으로 쓴 글씨)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하게 내려쓴 획 등을 볼 때 머릿돌에 새겨진 '정초' 글자가 이토 히로부미 글씨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봤다.

또 글씨를 새기는 과정에서 획 사이가 떨어져 있어야 하는 부분이 붙어 있고, 붓이 지나간 자리의 서체를 살리지 못한 점 등 정교함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함께 내놨다.

다만 문화재청은 특이사항으로 정초석에서 정초 일자(포석을 설치한 날짜)와 이토 히로부미의 이름을 지우고 새긴 '융희(隆熙) 3년 7월11일'(1909년 7월11일) 글씨가 이승만 대통령의 필치가 연상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융희는 1907년부터 사용된 대한제국의 마지막 연호다.

문화재청은 "그 부분에 대한선 정확한 기록이 없는 상태다. 아마 해방 이후 일본 잔재를 없애고 민족 정기를 나타내기 위해 이승만 전 대통령이 특별히 써서 석공이 새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고증 결과를 서울시(중구청)와 한은에 통보할 예정. 한은이 정초석 글씨에 대한 안내판 설치나 '정초' 글 삭제 등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신청할 경우 문화재청은 전문가 의견 수렴과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종합적 관리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번 조사는 정초석의 '정초(定礎)'글씨가 이토 히로부미가 쓴 글씨라는 주장이 지난 1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제기되면서 진행됐다. 한은 본관은 1907년 착공해 1909년 정초 후 1912년 조선은행 본점으로 준공됐다. 광복 후 1950년 한국은행 본관이 됐으며 1987년 신관 건립 후 현재는 화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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