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표 시계' 의 뮤즈는 카망베르 치즈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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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10-22 17:45   수정 2020-10-23 02:19

'달리표 시계' 의 뮤즈는 카망베르 치즈였네


그리스어 유레카(Eureka)는 ‘발견했다’ 또는 ‘알아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원전 220년께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할 때 욕조의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유레카’라고 외친 것을 기원으로 본다.

예술가들도 창작에 영감을 주는 유레카를 경험한다. 세계 미술사를 펼치면 일상에서 경험한 우연한 발견을 창의적 발상으로 전환시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흥미로운 사례들을 접하게 된다. 20세기 최고의 초현실주의 화가로 평가받는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걸작 ‘기억의 지속’이 대표적이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소장품인 ‘기억의 지속’은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품 중 하나이자 지금까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명화다.

그런데 불후의 걸작을 탄생시킨 유레카는 뜻밖에도 카망베르 치즈였다. 치즈와 명화의 엉뚱한 조합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작품을 감상하면서 유레카의 비밀을 풀어보도록 하자.

그림의 배경은 스페인의 휴양지로 유명한 카다케스 인근 포트리가트 해안 풍경이다. 스페인 피게레스 출신인 달리는 지중해의 눈부신 햇빛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카다케스 해안과 바닷바람에 깎여나간 기암기석이 신비한 조화를 이루는 포트리가트의 독특한 지형에 매료돼 화폭에 즐겨 담았다.

이 그림은 포트리가트 해변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렸지만 꿈속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특히 화면에 등장한 시계의 강렬한 이미지는 초현실적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세 개의 시계는 물렁물렁한 형태로 변형돼 나무 상자와 죽은 올리브 나뭇가지, 정체불명의 생명체에 걸쳐져 있고, 나무 상자 위에 놓인 붉은색 회중시계에는 개미떼가 바글거린다. 축 늘어진 시계와 부패한 시계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눈에도 매우 충격적인 이미지다. 세계 미술사를 통틀어 그 누구도 시계를 이처럼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그림에 표현한 적이 없었다.

달리는 평소 즐겨 먹던 프랑스 카망베르산 고급 치즈에서 녹아내리는 시계에 대한 최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우리는 방금 저녁 식사의 마지막 코스로 맛 좋은 카망베르 치즈를 먹었다. (…) 모두 사라지고 적막이 흐르자 조금 전 먹었던 치즈가 거의 액체처럼 흘러내릴 듯한 흐물흐물한 모습이 돼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 나는 일어나 작업실로 가서 불을 켜고, 작업 중이던 그림에 습관처럼 시선을 던졌다. (…) 그때 나는 봤다. 내가 무엇을 그려야 할 것인지를. 내 눈앞에 아주 흐물흐물한 두 개의 시계가 떠올랐다. 단숨에 작업에 들어가 두 시간 만에 그림을 완성했다. 아내 갈라가 그림을 보고 이렇게 외쳤다. ‘누구라도 이 그림을 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이제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프랑스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이렇게 말했다. “우연이 어떤 사람에게 일어나는지 관

한 적이 있는가? 순간적인 영감은 그것을 얻으려고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하고 고심해온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법이다.” 머릿속 아이디어가 그림으로 구체화되는 2시간 동안 달리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당시 달리는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연관성을 탐구하고 있었다. 기억과 연관된 시간은 규칙적이고 객관적인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불규칙적이고 주관적인 심리적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시간의 균질성, 절대성, 정확성을 거부하는 달리의 생각에 확신을 줬다.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길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관측자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시간은 속도와 중력에 대해 상대적이며 모든 사물은 자신만의 특정한 시간을 갖는다. 달리는 시계 침이 가리키는 기계적 시간이 아닌, 무의식 속 기억과 연관된 심리적 시간을 상징하는 새로운 형태의 시계를 창안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심하던 달리에게 뜻밖의 선물처럼 유레카의 순간이 찾아왔다. 카망베르 치즈와 상대성이론의 만남으로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멈추고, 때로는 영원히 지속되는 시계가 세계 미술사에 최초로 등장했다.

‘달리표 시계’는 인간의 고정관념을 깨는 사고의 혁신을 이뤄냈다. 단단함과 부드러움의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일원적 시간 개념을 다원적 시간 개념으로 확장시켰다. 부드러운 시계는 사람들에게 시간의 지배에서 벗어나 시간의 주인이 되는 법을 가르쳐줬다. 짧은 인생을 길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전해줬다.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 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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