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나무처럼 꼿꼿, 햇빛같이 따뜻했던 적명을 기억하며

입력 2020-10-22 17:59   수정 2020-10-23 02:46

“봉암사에 다녀간 많은 학자들이 적명 스님(1939~2019) ‘뒷조사’를 한다는 소문이 우스갯소리가 아닙니다. 저 역시 학자들에게 적명 스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가야산 호랑이’로 유명했던 성철 스님의 제자인 원택 스님(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의 회고다. 간화선(화두선)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한국에 왔을 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표적인 선지식으로 소개받는 이가 경북 문경 봉암사 선원의 적명 스님이었다고 한다. 스타일이 서로 다른 서구 학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선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 줬기 때문이다.

스무 살에 출가해 지난해 말 홀연 입적하기까지 적명 스님은 60년을 선승으로 살았다. 참선에 매진하면서도 대승 불교 경전은 물론 남방 불교의 소승 경전까지 독학으로 섭렵했다. 깨달음을 위해서라면 지위나 종파 따위에 걸림이 없었다. 연배가 한참 차이 나는 후배와의 토론도 마다하지 않았다. 2013년 하안거가 끝난 후 서울 전등사에서 한국 불교의 변화와 쇄신을 주제로 후배 스님들과 모인 자리는 지금도 회자되는 일화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남방 불교의 대표 논서인 《청정도론》을 읽고 주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니 한 번 검토해 달라며 이 책을 번역한 각묵 스님에게 50쪽 분량의 메모 노트를 건넸다. 조계종 종립선원인 봉암사 선방의 최고 어른(수좌)이었는데도 말이다.

《적명을 말하다》는 이런 적명 스님에 대한 조계종 선승들의 사후 평가다. 원택 스님을 비롯해 봉화 축서사 문수선원장 무여, 전국선원수좌회 상임대표 의정, 조계종 원로회의 수석부의장 대원 스님 등 16명의 선사와 속가 동생(김동호 거사)이 꼿꼿하면서도 자상했던 적명 스님의 면모를 들려준다. 불교 매체 기자 출신인 유철주 작가가 스님들을 인터뷰했다.

2009년 봉암사 스님들이 조실로 추대했을 때 “나는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조실 말고 수좌(首座·참선하는 스님)로 살겠다”고 고집했던 일을 비롯해 재미난 일화가 많다. “선교를 겸비한 청정한 수행자” “운수납자의 표상” 등의 평가가 허언이 아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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