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신뢰가 무너져선 안된다

입력 2020-10-25 18:04   수정 2020-10-26 15:31

우리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계란을 살 때 상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깨뜨려보지 않는다. 식품점 주인이 상한 계란을 팔지 않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믿음과 신용은 시장질서의 기초다.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이 물건을 파는 사람이 속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시장은 작동하지 않는다.

믿음과 신용을 바탕으로 한 시장질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생적으로 진화한 결과다. 많은 거래를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 이익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만의 목적을 위해 상대방을 착취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며, 상대방도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 나를 착취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 됨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런 행동규칙이 자연스럽게 형성됐고, 그 행동규칙을 따르면 서로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기대 아래 자발적 교환이 이뤄진다.

교환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 이익을 보기 때문에 교환이 많을수록 이익 보는 사람이 많아지고 사회 전체적인 이익도 늘어난다. 교환 활동이 활발할수록 경제가 성장한다. 이는 믿음과 신뢰가 경제성장의 중요한 요인이고 국가 흥망성쇠의 열쇠임을 시사한다. 달리 말하면 신뢰가 떨어진 사회일수록 거래가 줄고 경제활동이 줄어 경제가 쇠퇴할 뿐만 아니라 국가가 위태롭게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행동규칙은 인간세상의 근본문제인 자원의 희소성에서 나왔다. 인간의 욕망에 비해 인간의 욕망을 모두 충족할 수 있을 만큼 자원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 상태로 놔둘 경우 그야말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이어진다. 희소한 자원에 재산권이 생기면 자원이 효율적으로 사용돼 자연이 제한하는 재화의 공급이 확대됨으로써 사람들이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고, 재화 부족을 둘러싼 사람들 간의 갈등 문제도 완화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 점은 재산권이 잘 보장되지 않는 저개발국가와 사회주의국가에서 재화의 결핍과 재화 부족을 둘러싼 갈등과 아귀다툼이 훨씬 더 심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처럼 재산권은 희소한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촉진하고 사회 정의와 평화를 위해 자생적으로 형성된 것이고, 이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규칙이 생겨났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행동규칙에 기초해 행동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제어되지 않으면 평화로운 인간협동이 이뤄지기 어렵다. 평화로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런 사람들을 힘과 강제력을 동원해 막아야 한다. 그런 힘과 강제력을 지닌 사회적 기구가 국가다. 국가는 사람들이 행동규칙을 준수하도록 하는 법을 정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제일 중요한 임무다. 그 임무를 책임지고 집행하는 기관이 정부다. 그래서 시장질서의 기초가 되는 믿음과 신용을 해치는 사기, 횡령, ‘거짓말 범죄’ 등을 엄격히 처벌하는 일이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신뢰를 망가뜨리는 행위를 처벌해야 할 정부와 공무원이 오히려 줄줄이 거짓말을 한다. 월성 원전 1호기 폐쇄 결정은 정부 거짓말의 결정판이다. 감사원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언제 폐쇄할 것이냐’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월성 원전 1호기를 조기 폐쇄했고, 대통령의 말에 맞추기 위해 청와대,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연계해 조직적으로 경제성을 왜곡·조작했다. 감사원의 현장감사 바로 전날 밤에는 증거 파일 444개를 삭제했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현재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각각 ‘사모펀드 의혹’ ‘아들의 군 휴가 미복귀 의혹’과 관련해 ‘거짓 해명’에 휩싸여 있다.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의 사기를 비롯해 최근 ‘거짓말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전국 검찰청에 접수된 사기·무고·위증 등 3대 거짓말 범죄가 계속 늘어 지난해 총 47만6806건으로 역대 최다였다는 보도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부와 집권층의 거짓말 행태가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발전과 평화의 기초인 신뢰가 무너지면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국가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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