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인재 10명이 회사 1개보다 낫다"…'지역 전문가' 도입, 글로벌 삼성 일궈

입력 2020-10-26 17:21   수정 2020-11-03 15:20


2000년대 초반 경기 용인에서 이건희 회장 주재로 ‘5년 후, 10년 후 비전’을 발표하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의 회의가 열렸다. 3시간여에 걸친 CEO들의 발표 직후 이 회장은 엉뚱한 얘기를 꺼냈다.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데 5년, 10년 후의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가 첫마디였다. 당황해하는 CEO들에게 이 회장이 강조한 것은 ‘인재’였다. 이 회장은 “좋은 사람을 뽑으면 그들이 5년, 10년 후의 미래를 멋지게 만든다”며 “비전도 중요하지만 좋은 사람을 뽑는 일에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사람에 대한 욕심이 유별났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의 관건은 결국 사람에게 달렸다는 게 이 회장의 믿음이었다. 국내 최초 신입사원 공개채용, 학력 및 여성 차별 철폐, 지역 전문가 제도 등은 이 회장이 28년 동안 삼성을 이끌면서 남긴 인재경영의 족적들이다. 이 회장의 인재경영은 삼성이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10만 명이던 직원 수는 52만 명(2018년 기준)으로 다섯 배 이상 늘었고 매출은 9조9000억원에서 387조원으로 무려 40배가량 급증했다.
10년 앞 내다본 글로벌 인재양성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2011년 삼성이 글로벌화에 성공한 요인으로 ‘지역 전문가’ 제도를 꼽았다. 1990년 시작된 이 제도는 국내 직원들을 세계 곳곳에 파견해 1~2년간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익힐 기회를 준다. 1인당 평균 1억원 이상 투자되는 이 제도를 경험한 인력은 5000명을 넘는다. 지금까지 쓴 경비만 1조원을 웃돈다.

지역 전문가들이 축적한 방대한 정보는 삼성이 선진시장은 물론 아프리카와 남미 같은 신흥시장에 진출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1990년대 태국에 파견됐던 한 직원은 현지 경영대학원을 다니며 고위직들과 친분을 쌓아 2000년대 중반 삼성이 태국에서 시장 점유율을 크게 높이는 데 공헌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지역 전문가가 삼성의 글로벌 현지 마케팅의 근간이며 급성장을 이룬 원천이라고 분석했다.

지역 전문가 제도는 이 회장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선 직원 역시 글로벌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삼성엔 글로벌 1등 제품도 변변치 않았기에 지역 전문가에 대한 이 회장의 애착은 상당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도 이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았다.
“천재 한 명이 수만 명 먹여 살린다”
그룹 사장단을 만날 때 이 회장이 잊지 않고 던지는 질문이 있었다. “핵심 인재를 몇 명이나 확보했는가”였다. 계열사 사장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를 인재 확보에 뒀을 정도였다. ‘21세기에는 한 사람의 비범한 천재가 수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신념에서였다. 이 회장은 입버릇처럼 “S급 인재 10명을 확보하면 회사 1개보다 낫다. S급 인재 100명이면 회사 10개보다 낫다”고 했다.

이 회장이 핵심 인재의 중요성을 간파한 것은 인텔, IBM 등에서 한국인 기술자를 영입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고 나서였다. 이때부터 이 회장은 핵심 인재의 영입, 유지에 큰 관심을 쏟았다. 2002년부터 계열사별로 핵심 인력 확보 실적을 매월 보고받았을 정도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직접 영입에 나설 만큼 인재를 중시한다. 올해 삼성전자 통합 연구조직인 삼성리서치 소장(사장)이 된 세바스찬 승(승현준) 프린스턴대 교수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승 소장은 이 부회장과의 인연으로 삼성에 둥지를 틀었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샐러리맨 연봉킹은 매년 삼성전자에서 나온다. 연봉 100억원 이상을 받는 CEO들이 즐비하다. 분기 기록은 스마트폰 갤럭시의 성공을 이끈 신종균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갖고 있다. 그는 2014년 1분기에만 96억원을 받았다. 하루에 1억원의 봉급을 받은 셈이다. 연봉으로 따지면 권오현 전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의 기록이 눈에 띈다. 그는 반도체산업이 슈퍼사이클을 맞았던 2017년 한 해에 243억원을 받았다.

삼성 CEO들이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배경도 신경영이다. 이 회장은 신경영을 발표하면서 “삼성을 ‘월급쟁이 천국’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경제계에선 핵심 인재에게 최고의 연봉을 보장해주는 성과주의가 삼성의 성공비결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두둑한 보상 덕에 삼성 임원들의 내부경쟁이 치열해졌고 그 결과 삼성의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이 회장은 국내 기업의 채용 제도에도 큰 획을 그었다. 1995년에는 열린채용 시대를 열었다. 학벌 중심으로 사람을 뽑던 관행을 깨고 학력 제한을 없애 능력만으로 직원 채용을 시작했다.

당시 이 회장은 “대학 졸업장과 관계없이 입사할 기회를 동일하게 주고 입사 후 승진, 승격에도 차별이 없도록 해야 한다. 삼성의 입사 기준은 학력이 아니고 실력”이라고 했다.

여성 차별을 없애는 데도 각별한 노력을 쏟았다. 1995년 여사원의 유니폼 착용을 없앴고 기혼 여성을 위한 보육시설을 세웠다. 한창 일해야 할 사람들이 부당한 차별 때문에 좌절한다면 국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라는 철학에서였다.

송형석/황정수/이수빈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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