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K의 공포'…"디지털로 가거나, 망하거나"[주용석의 워싱턴인사이드]

입력 2020-10-28 12:02   수정 2020-10-28 13:0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 이후 글로벌 경제에 ‘K자 회복’ 공포가 커지고 있다. 경기 회복의 온기가 전 계층에 고루 퍼지지 않고 일부 계층과 기업에 한정돼 양극화가 심해지고 그 결과 사회 불안이 커질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수전 클라크 미국 상공회의소 대표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V자 회복(침체 후 급반등) 기대는 오래전에 사라졌다”며 미 경제가 K자 회복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JP모간은 미 정부와 중앙은행(Fed)의 대규모 부양책 이후 일부 기술 대기업과 부유층·화이트칼라(재택근무 가능 사무직)는 급격히 회복됐지만 디지털 전환이 늦은 전통 기업과 중소기업·자영업자·빈곤층·블루칼라(대면 근무 노동자 계층)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K자 회복이 현실화됐다고 진단했다.

K자 회복이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골을 깊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지난 10월 14일 기자회견에서 “선진국과 달리 K자의 아래쪽 다리에 있는 가난한 개발도상국은 절망적인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 회장은 최근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빈부 격차가 큰 상태에서 경기 충격이 오면 반드시 혁명과 같은 조정 수준을 밟는 게 역사의 교훈”이라고 경고했다.
현실이 된 ‘K자 회복’
지난 10월 9일 미국 워싱턴D.C. 인근 타이슨스코너 쇼핑몰. 콜럼버스 데이 연휴를 앞둔 대목이었지만 쇼핑몰은 한산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쇼핑객의 발길이 뜸해진 것이다. 니먼마커스·블루밍데일 등 쇼핑몰에 입주한 백화점에선 손님보다 직원 수가 훨씬 많았다. 피자가게를 운영하는 앤디 씨는 “며칠 전 가게 문을 다시 열었는데 아직까지는 장사가 안 된다”고 말했다.

9월 13~14일 아마존 프라임 데이. CNBC는 아마존 유료 회원을 대상으로 빅 세일이 열린 이틀간 아마존 입점 업체들은 35억 달러(약 4조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작년 프라임 데이 때보다 60% 가까이 늘어난 금액이다. 아마존은 자체 판매액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JP모간은 이 기간 매출(입점 업체+자체 판매액)을 작년보다 42% 늘어난 75억 달러로 추정했다.

코로나19가 미국 경제를 전혀 다른 ‘두 세계’로 갈라 놓았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고 사람들이 대면 접촉을 기피하면서 아마존·페이스북·줌(화상 회의 애플리케이션) 등 비대면 기업과 디지털 서비스 기업은 주가도 오르고 호황을 누리고 있다.

아마존 주가는 실적 호전에 힘입어 올해 72%(10월 16일 기준) 올랐다. 연말연시 수요 급증에 대비해 앞으로 10만 명을 더 채용하기로 하는 등 일손이 부족할 지경이다. 반면 113년 전통의 고급 백화점 니먼마커스와 118년 역사의 JC페니는 코로나19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항공사·호텔·테마파크업계에선 감원 발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고용 시장에도 반영됐다. 미국은 코로나19의 충격으로 한때 2200만 명이 실직했다. 이후 경기 부양책과 봉쇄 정책 완화로 최악의 상황은 벗어났지만 2월과 비교하면 여전히 1100만 개의 일자리가 날아간 상태다. 게다가 일시 휴직자의 상당수는 영구 휴직자로 전락하고 있다. 4월 200만 명이었던 영구 휴직자는 9월 375만 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실직 충격’은 대부분 저소득·저학력 층에 국한된 얘기다. 미 노동부가 25세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졸 이상은 9월 기준 취업자 수가 코로나19 이전보다 0.2% 감소에 그쳤다. 반면 고졸 중퇴 이하는 18.3%나 급감했다. 소득 수준별 취업자 수도 마찬가지다. 리서치 업체 에버스코어ISI에 따르면 시급 28달러 초과 노동자는 8월 기준 취업자가 오히려 1.2% 늘었다. 이에 비해 시급 16달러 미만 노동자는 26.9% 줄었다. 미 정부가 3조 달러의 부양책을 쏟아붓고 Fed가 제로 금리(0)와 무제한에 가까운 돈 풀기에 나섰지만 저소득층은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가난해졌다.

고소득층 노동자는 관리직 등 재택근무가 가능하거나 대기업 직원이 많아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했다. 이에 비해 저소득층은 대면 근무가 불가피하고 식당·숙박 시설 등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업종 종사자가 많아 피해가 컸다.
일자리 1100만 개 날아갔는데 나스닥은 상승
부유층과 빈곤층의 양극화는 자산 시장에서도 커지고 있다. 올 들어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28%,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7% 상승했다(10월 16일 기준). 2008~2009년 금융 위기 때는 S&P500지수가 바닥을 찍은 뒤 회복되는 데 4년 정도 걸린 것과 대조적이다. 집값도 지난 8월 전년 동기 대비 11.4%(중간가격 기준) 올랐다.

실물 경제 부진에도 주식과 집을 가진 자산 계층은 오히려 더 부자가 됐지만 주식이나 집이 없는 계층은 자산을 불릴 기회조차 없었다. 미국인 중 상위 1%가 전체 주식과 뮤추얼펀드의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상위 10%의 보유 비율은 87%에 달한다.

‘K자 회복’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월 29일 1차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증시 호황을 내세워 “미국 경제가 V자 회복 중”이라고 하자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는 서민층의 타격을 지적하며 “K자 회복”이라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K자 회복이 장기화하면 경제 성장에 타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 노동부 수석경제학자 출신인 하이디 시어홀츠는 “코로나19로 수백만 명의 실직자가 생기면 경제에서 소비 수요가 줄어들고 그 결과 기업의 제품 판매가 감소해 2차 해고가 이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디지털 전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갈리는 ‘K자 경제’에서 디지털 전환 속도가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가 됐기 때문이다.

화상 회의 전문 기업 줌이 한 시대를 풍미한 대표적 기술 기업 IBM의 시가총액을 추월한 게 단적인 사례다. 줌은 지난 4월 중순만 해도 IBM보다 시가총액이 1000억 달러 이상 뒤졌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화상 회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지난 9월 IBM을 넘어섰다. 줌의 시가총액은 1616억 달러(10월 19일 기준)로 IBM의 1117억 달러보다 500억 달러 정도 많다.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선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시총 2340억 달러)가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제국’ 디즈니(2244억 달러)를 따돌렸다.

위기의식을 느낀 디즈니는 스트리밍 중심 회사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했다. 코로나19로 영화관을 찾는 고객이 줄자 넷플릭스처럼 안방 시장 공략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세계 최대 유통 업체 월마트는 지난 9월 연회비 98달러, 월회비 12.95달러를 내면 35달러 이상 주문 시 무료 배송해 주는 ‘월마트 플러스’를 선보였다. 온라인 최강자 아마존의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를 벤치마킹했다.
나이키는 백화점과 아울렛 입점 매장을 줄이는 대신 온라인 직접 판매를 늘리고 있다. 나이키가 지난 9월 공개한 최근 3개월(6~8월) 매출은 0.6% 줄었지만 온라인 매출만 보면 82% 늘었다. 나이키는 이 기간 오프라인 매장을 대부분 다시 열었는데도 온라인 매출이 급증했다. 존 도나호 나이키 최고경영자(CEO)는 실적 콘퍼런스에서 “디지털이 뉴노멀(새로운 정상)”이라며 “코로나19 위기가 끝나도 소비자들은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전환은 코로나19 이전에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지만 코로나19는 이를 더 가속화했다. 데이터 정보 업체 팩티어스와 코어사이트 리서치에 따르면 4~9월 미국 내 온라인 카드 결제액(신용카드+현금카드)은 전년 동기 대비 월평균 88% 늘었다. 반면 이 기간 오프라인 점포는 5000개 넘게 순감(신규 개점-폐점)했다.

소비자 대응뿐만 아니라 기업 생산성 측면에서도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직원들이 서로 다른 공간에서 화상으로 협업할 수 있는 근무 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항공우주 시스템 개발 업체 허니웰은 세계 83개국 11만 명의 직원 대부분이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셰일라 조던 허니웰 최고디지털기술책임자는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디지털 전환은 생산성과 직결된다”며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고 하기보다 일정 수준만 되면 빨리 움직이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이 글은 한경비즈니스 제 1300호(2020.10.26 ~ 2020.11.01)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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