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의 R까기] 두부살 때 국제 콩값 확인하고 사나요?

입력 2020-10-31 08:45   수정 2020-10-31 08:58

5년 전만해도 이렇지 않았다. 집을 사건 전세를 알아보건 부동산 통계를 참고한 적은 없었단 말이다. 부동산 중개업소에 들러서 집값을 알아보고 물건이 있나 보면서 집을 찾았다. 통계라면 실거래가 정도 찾아보는 수준이었다.

일반인들이 집을 구하거나 내놓을 때, 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이나 KB지수와 같은 통계를 찾아보거나 비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집을 사면서 대출시 설명자료를 보면서 'KB지수라는 게 있구나' 정도를 알았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국내 부동산 통계는 물론 해외 부동산 통계, 부동산 관련 기사, 애플리케이션, 유튜브, 커뮤니티 댓글까지 찾아보고 집을 알아보고 있다.

두부를 사러가기 전에 국제 콩값 통계부터 알아보는 형국이다. 삼겹살 사먹으러 가는데 돼지고기 시황부터 체크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어쩌다가 전국민이 집 하나 알아보는데 부동산 통계까지 찾아보고 예측하면서 공부해야만 됐을까?

최근 부동산 통계를 놓고 말이 많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감장에서 대놓고 민간통계인 KB통계를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고,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KB부동산은 시장지수를 발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몇 시간뒤 다시 발표하겠다고 번복했지만, 부동산 통계를 놓고 정부와 민간의 신경전이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국토부는 이러한 해프닝 이후 지난 29일 설명자료를 내놨다. 최근 KB 부동산의 매매·전세 거래지수 발표 중단결정 및 번복관련, 일부 언론에서 정부의 외압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를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국토부는 "KB 부동산의 의사결정과 관련해 정부는 KB 부동산과 어떠한 사전접촉 또는 협의도 진행한 바 없다"며 "아무런 근거 없는 추측성 보도는 정부가 민간 통계에 외압을 행사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앞으로 관련 보도에 신중을 기해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언론의 보도가 문제라는 것인데, 그러기엔 정부부터 신중한 언행이 필요했다. 집값 상승 문제를 지적하는데 '부동산 통계'로 관심을 돌리고, 입맛에 맞지 않는 통계에 눈치를 줬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최근까지도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6일 부동산 통계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부동산의 실거래 현황이 정확하게 반영되는 실거래가 통계를 통해 부동산 정책의 토대가 되는 부동산 공공통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장관은 민간통계를 폄훼하는 발언을 국감장에서 쏟아냈던 터다. 그는 "KB국민은행 통계는 호가 위주다. 이 시세는 은행이 대출할 때 사용하는데, 대출을 많이 받게 하려고 될 수 있으면 시세를 높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출제한선을 걸어놔서 '영끌'을 하는 마당에 시세를 높게 한다는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지난 7월 KB주택가격 등을 토대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값이 52% 상승했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튿날 국토부가 감정원 주택가격 동향조사를 인용해 현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14.2%라고 설명했다. 집값이 올라서 문제라고 지적했더니 숫자가 문제라고 해명했다. 아파트에 불났다고 신고했더니 정확한 동호수를 얘기해주지 않아서 출동 안하겠다고 하는 꼴이다.


일반적으로 두부나 삼겹살을 살 때 국제 시세를 살펴보진 않지만, 가격이 너무 오르거나 떨어지면 '이게 뭐지'하고 알아보게 된다. 삼겹살이 '금겹살'이 되거나 오징어가 '금징어'가 되는 상황이 된 경우다. 공급이 달리거나 수요가 늘어나는 등 합리적인 이유라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도매 돼지고기값은 내렸다는데, 동네 슈퍼에서 가격이 오른다면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우리동네 두부값이 30% 올랐는데, 전국 두부값이 10% 올랐다면 '이건 아닌데'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물가가 불안하다는 얘기인데, 이건 나라에서 들여다봐줘야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몇년간 부동산 시장도 이렇게 흘러왔다. 집을 알아보려고 나가보면 '너무 올랐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통계나 정부 얘기는 다르다. 우리 동네만 그런가 싶었으나, 앱이나 커뮤니티를 보니 다른 동네도 비슷한 상황이다. 집 구하려는 사람들은 난리가 났는데, 정부에서는 문제 없단다. 그나마 반영이 되는 통계를 찾아서 호소하는데 이 통계는 아니란다. 현실과 괴리가 커지는 통계를 놓고 짜낸 정책이 23번이다.

답답한 심정에 여기저기 뒤지다보니 전문가 수준으로 부동산 지식이 생겼다. 시무 7조를 써서 화제가 된 조은산이나 최근 책을 내면서 공감을 산 삼호어묵(필명)도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집집마다 부동산 문제로 고민이 한 가득이다. 일반인들은 먹고살 걱정만으로도 벅차다. 본업을 고민하고 가족들 건강 챙기기도 바쁜 시절이다. 가끔 집 구할 때 정도만 부동산을 신경써야하는 게 정상이다. 신경쓰이는 통계가 거짓말이라고 해봤자다. 임금님이 벌거벗은 건 어린아이도 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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