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사페레 아우데

입력 2020-10-29 17:59   수정 2020-10-30 00:03

2주 전 습관에 대해 쓴 나의 에세이를 기억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의 습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습관에 관해서라면 집단이나 기업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에는 규율, 매뉴얼, 경영 방침, 표준 행동 절차(SOP) 등의 형태로 체계화된 관습이 있으며, 이런 체계화를 통해 업무 과정, 내·외부 이해관계자를 대하는 방식, 특정 행사를 다루는 방식 등을 통제한다. 요즘 모든 기업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시 대처 방법을 표준 행동 절차로 만들어 놓은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표준 행동 절차뿐 아니라 많은 기업은 행동강령(COC)도 만들어 놓고 있으며, 이를 통해 조직 행동과 관습에 영향을 주고 좋은 기업시민이 되고자 한다. 표준 행동 절차와 행동강령은 대부분의 상황을 완벽히 통제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이번 에세이를 쓰기 위해 다섯 개 국제 조직의 행동강령을 찾아봤다. 내가 찾아본 게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야 없겠지만, 놀랍게도 어디에도 직원 각자가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구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성적 사고와 판단이야말로 오직 인간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능력인데 말이다. 아마도 기업에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직원의 올바른 판단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서구 사회를 근대로 이끈 가장 중요한 문화적 발전은 17~18세기 계몽주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계몽주의 운동은 자연과학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계몽주의 사상의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는 라틴어로 “사페레 아우데(Sapere aude·용기 내서 알려고 하라)”이다. 사페레 아우데로 시작된 이른바 지식의 폭발이 없었다면 인간이 달에 착륙했던 사건도, 반도체도, 오늘날의 스마트폰이나 5세대(5G) 이동통신도 없었을 것이다. 유럽에 커피숍이 퍼진 것 역시 계몽주의 운동에 기인한다 할 수 있다. 과학 발전과 더불어 이성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어쩌다 우리는 점점 더 규칙과 규정의 힘을 빌려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게 됐을까.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왜 법으로 규제하고 있는 걸까. 왜 조직은 행동강령이란 걸 만들어 놨을까.

아마도 사람이 제아무리 이성적으로 사고한다고 하더라도, 실상 항상 그렇진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열정, 욕망, 자부심 등과 같은 인간의 욕구가 종종 이성보다 먼저 움직이곤 한다. 완벽하게 이성적이란 것은 단번에 성취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결국엔 우리가 완전히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는 어떤 것이라 하는 게 맞다.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노력할 필요조차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성적으로, 사고 역량을 충분히 발휘해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지는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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