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병호 사외이사는 “이번 기회에 이사회 기능을 더 강화하자”는 의견을 냈다. “SK(주)의 핵심사업인 신규 투자를 보다 촘촘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외이사들이 모두 동의했다. SK(주) 이사회는 지난 27일 회의에서 “이사회가 반드시 승인해야 하는 투자액 규모를 기존 자기자본의 1.5% 이상에서 1% 이상으로 강화한다”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SK(주) 이사회는 투자의 적절성 등을 심의한다. 모든 투자 사안을 들여다볼 수 없어 자기자본의 1.5% 이상에 해당하는 투자만 살펴봤다. SK(주)의 지난해 자기자본금(13조4026억원)을 감안하면 2000억원 이상의 투자가 이사회 승인 대상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금액이 1300억원 안팎으로 내려간다. 자기자본의 1% 이상으로 이사회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2017년 이후 진행된 투자에 이 기준을 들이대면 안건이 25%나 늘어난다. 이사회에서 처리할 안건이 앞으로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김 사외이사는 “이사회 권한이 비교적 강한 금융지주사가 자기자본의 1% 이상 투자 시 이사회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며 “투명 경영에 강력한 의지를 가진 SK(주)라면 이 정도는 감당해야 할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을 지낸 금융 전문가다.
SK(주)는 이사회에 안건을 올리기 2~3주 전 안건을 우선 공지한다. 이후 사외이사만 참여하는 ‘거버넌스위원회’가 논의한다. 독립성과 투명성을 위해 거버넌스위원회에 사측 임원들은 참여하지 않는다.
사외이사들은 투자의 적절성 등을 따지고 고칠 게 있으면 의견을 낸다. 최종적으로 이사회에 올라오는 안건은 최소 두 차례 이상 사외이사들의 검토를 거치는 셈이다. 사측이 지난 7월 이사회 보고를 간소화하겠다고 제안한 이유였다.
사외이사들은 이사회 승인 대상이 되는 투자 기준 금액을 바꾸기 전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방향성엔 동의하지만 회사 규모가 더 커지면 자기자본도 늘 텐데 그럼 나중에 또 이 비율을 낮춰야 하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자기자본비율로 하지 말고 1000억원, 2000억원 등 금액으로 하는 것은 어떤가”라는 주장도 나왔다. 김 사외이사는 “결론적으로 1% 이상으로 했지만, 사외이사 간 논쟁이 대단했다”고 전했다.
이후 최태원 SK그룹 회장 대신 고려대 총장을 지낸 염재호 사외이사가 의장이 됐다. 감사 기능도 막강하다. 감사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김 사외이사를 뒷받침하는 별도의 스태프 조직까지 올초 신설했다.
SK(주)의 이사회 중심 경영은 외부에서도 높이 평가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2018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우수기업 평가에서 SK(주)를 ‘대상’에 선정했다. 이사회와 감사기구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우존스지속가능경영지수(DJSI)월드에도 작년까지 8년 연속 편입됐다. 회사 관계자는 “이사회 중심 경영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부족한 점은 계속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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